주식시장 밸류에이션 6배 불과, 회사채 수익률 한 주 사이 100bp 폭등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주식과 채권, 통화까지 러시아 자산이 말 그대로 패닉이다.
지난 6일 미국이 추가 제재를 발표한 데 따른 이른바 ‘재벌 리스크’가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킨 것. 주요 금융자산이 수직 하락했지만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 저가 매수를 권고하는 의견은 찾기 어렵다.
러시아 루블화 <출처=블룸버그> |
미국과 러시아가 신냉전을 연출하는 데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곳곳에 포진한 악재가 밸류에이션 논리를 꺾어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 증시는 12개월 예상 실적을 기준으로 불과 6배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뉴욕증시의 S&P500 지수가 17배 내외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한 저평가 매력을 지닌 셈.
시가총액 기준 러시아의 3위 종목인 가즈프롬은 4배의 밸류에이션에 거래되고 있고, 그 밖에 주요 기업들도 주가수익률(PER)과 주가자산비율(PBR) 배당수익률 등 거의 모든 지표를 근거로 전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채권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날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주에만 러시아의 달러화 표시 회사채 수익률이 평균 100bp 폭등했다.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개별 기업들의 디폴트 리스크가 크게 부상했다. 알루미늄 업체 유나이티드 코 러살은 미국이 또 한 차례 제재를 부과할 경우 일부 채권의 디폴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러시아 기업들의 회사채와 국채까지 패닉 매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추가 제재를 예상한 투자자들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결과다.
TD증권에 따르면 은행권을 제외한 러시아 기업들의 회사채 규모는 27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올해 만기 도래하는 물량은 130억달러에 불과하지만 투자 심리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루블화도 마찬가지. 제재 충격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루블화 가치는 최근 한 주 사이 6% 가량 떨어졌다. 시리아 사태가 맞물리면서 루블화는 연일 ‘팔자’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러시아의 자산시장 전반에 걸친 하강 기류가 투자자들의 불안감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 급락과 바닥권으로 밀린 밸류에이션이 매수의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당분간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그렉 사이킨 이머징마켓 최고투자책임자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다음 제재 대상이 어느 기업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매수 기회가 아니라 리스크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인브릿지 인베스트먼트의 존 베이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소위 ‘재벌 리스크’가 높은 기업의 회사채 물량을 축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WSJ은 러시아 주식과 관련, 밸류에이션이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 리스크 이외에 중장기 경제 펀더멘털 측면에서 보더라도 가치 투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