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압박' 그 자체가 목적이어선 안돼
[뉴스핌=김은빈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북 외교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일본 내에서 나왔다.
22일 아사히신문은 "외교의 목적은 전쟁을 피하고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지 북한을 몰아세우는 게 아니다"라며 아베 총리의 외교를 비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블룸버그> |
◆ 일본, 동북아서 '나홀로' 압박 강조
아베 총리는 최근 대북 압박 강화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 총리로선 처음방문한 세르비아에서도 "북한은 지금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유럽에도 중대한 위협이다"라고 대북 압박 강화를 촉구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상도 "북한의 '미소(微笑)외교'에 속아서는 안된다"며 못을 박았다.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와 대(對)북한 포위망을 구축하면 중국, 러시아 등에도 영향을 줘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거라 생각한다고 신문은 평가한다. 아베 총리가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많은 76개국을 방문하며 외교에 힘을 쏟는 배경에도 북한이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신문은 "아베 총리의 외교는 중국, 한국 등과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눈에 보이는 성과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현재 동북아에서 대북 압박에만 힘을 쏟는 건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같은 동북아 국가인 한국과 중국은 대북 제재에도 나서는 한편 대화에도 나서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데다, 한국 역시 북한과 2년 만에 고위급 회담을 갖고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석하기로 합의했다.
신문은 "일본은 '(북한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하자고 말하지만, 직접 북한에 하는 것은 없고 다른 나라들에 호소만 할 뿐"이라며 "소외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사진=AP/뉴시스> |
◆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와의 밀월?
아베 총리의 강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다.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미일동맹은 반세기가 넘었지만 지금처럼 깊은 관계였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후(戰後) 일본 외교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미국은 민주주의나 인권문제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미일관계를 강화하는 게 곧 일본의 국익으로 연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은 "현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며 세계와 등을 돌리고 있어,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평한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말했을 때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정상들은 즉시 미국을 비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이후 유엔(UN)에서 미국의 방침을 철회하는 결의에는 찬성하긴 했지만, 신문은 "중동평화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하겠다던 일본 외교에는 그림자가 드러워진 후"였다고 논평했다.
더군다나 미국 정상과의 신뢰관계로 일본 외교의 폭을 넓힐 수 있는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아베 총리는 '골프외교' 등을 통해 미일 정상 간의 친밀함을 과시하지만 대북관계에서 일본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은 성격이 센 트럼프 대통령이다. 수상은 상당히 진중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지난 11월 29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사진=북한 노동신문> |
◆ 지나친 대북압박, 전쟁 초래할 수도
신문은 "국제적인 포위망을 형성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나오는 건 중요하다"면서도 "과도한 압력을 가해 군사충돌이나 북한의 폭주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도 미국과 북한 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전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연구소는 북한이 주변국을 공격할 경우 핵을 사용하지 않아도 희생자 수는 수십만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과거 외교관으로서 북한과 협상을 통해 고이즈미 전 총리의 방북을 실현시켰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전 외무심의관은 "북한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P3C'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P3C는 '북한에 대한 압력(Pressure)을 위해선 ◆한국·미국·중국과 긴밀한 연대(Coordination) ◆불의의 사태(Contingency)에 대한 세밀한 계획과 준비 ◆북한과 수면하에서 소통채널(Communication channel)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나카 전 심의관은 현재 일본 정부의 외교에 대해 "미국을 지원해 아시아에서 평화를 구축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대북 압박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신문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라는 목표와 아베 총리가 강조하는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력'이라는 골을 어떻게 메울 것이고, 주변국과 어떻게 발을 맞춰나갈 것인지 일본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놓여있다"고 논평했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