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멘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제재
[세종=뉴스핌 이규하 기자]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전산화 단층 엑스선 촬영장치(CT) 구동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놓고 중소 유지보수사업의 신규 진입을 막은 독일 지멘스가 공정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멘스, 지멘스헬스케어, 지멘스헬시니어스의 후속시장(Aftermarket) 경쟁제한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약 62억원의 과징금을 잠정 부과한다고 17일 밝혔다.
현재 국내 CT·MRI 장비 시장은 GE, 필립스 등 소수 다국적 기업이 과점하는 구조로 지멘스가 4년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2016년 기준 지멘스는 장비 유지보수(AS) 시장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업체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멘스는 경쟁사업자와 거래하는 병원의 거래조건을 차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말부터 장비를 제조·판매하지 않는 유지보수 서비스 제공의 독립유지보수사업자(ISO)가 관련 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자 배제를 위한 악행에 나선 것.
우선 지멘스는 자사의 CT·MR를 구매한 병원에 장비 안전관리 및 유지보수를 위한 필수적 서비스키를 발급했다.
서비스키는 장비에 탑재된 서비스 소프트웨어 사용을 위한 일종의 비밀번호다. 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 기능 범위에 따라 레벨이 차등화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뉴스핌DB> |
이 업체는 ISO와 거래하지 않는 병원이 요청할 경우 고급 자동진단기능을 포함한 상위 레벨 서비스키(지멘스 내부 엔지니어용)를 무상으로 지급(당일 즉시 발급)했다.
그러나 ISO와 거래하는 병원에게는 기초 레벨 서비스키를 유상으로 판매했다. 발급에 소요되는 기간도 요청 후 최대 25일이 걸렸다. 해당 서비스키의 1회(최소 단위, 2주간 사용가능) 발급비용은 지멘스가 제공하는 1회 유지보수 서비스 평균 비용(부품 제외)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서비스키는 미국 FDA 안전 규제에 따라 미국 병원 및 ISO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이 업체는 중소 유지보수 사업자와 거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및 저작권 침해 문제점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내용으로 병원에 공문을 발송했다.
신영호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이 사건 행위로 지멘스 CT 및 MRI 시장의 진입장벽이 강화되고, 실제 4개 ISO 중 2개 사업자가 관련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등 관련 시장의 경쟁이 제한됐다”며 “ISO와 거래 시 병원이 감수해야할 기회비용이 증가하면서 ISO의 가격경쟁력이 상실됐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이어 “서비스키 기능 제한, 발급 지연으로 인해 ISO의 서비스 품질 및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가중됐다”면서 “서비스키 발급 지연으로 병원이 의료기기 관련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하는 안전검사가 지연되는 상황도 초래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정위는 미국 FDA 등 해외사례를 참고, 환자·장비사용자 안전에 직결되는 사항의 경우 장비 제조사의 정보공개 의무를 보다 구체화하는 방안을 관계기관에 요청할 방침이다.
[뉴스핌 Newspim] 이규하 기자 (jud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