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오진다? 긴장감 쩐다? 놀라서 감독을 때리고 싶었다?(웃음)”
인터뷰 직전까지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돌아다니며 모바일 반응을 살피고 있던 터였다. 이에 관객 반응은 좀 어떠냐 묻자 그가 하나, 둘 읽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긴장은 설렘으로, 설렘은 기대로, 기대는 또 안도로 바뀌고 있는 듯했다. 그럴 법했다. 9년만, 정식으로는 무려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 아닌가. 관객들의 평가를 하나하나 살피는 것도, 호평에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도, 모두 그럴 법했다.
‘천재 스토리텔러’ 장항준(48) 감독이 신작 ‘기억의 밤’을 들고 드디어 충무로에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이 영화는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담았다.
“원래 제 직업으로 너무 오랜만에 왔죠. 물론 영화감독만이 직업은 아니지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진짜 직업, 자주 않지 않은 본업이잖아요(웃음). 이번 작품은 쓰면서도 만들면서도 초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온전히 여기에만 신경을 썼죠. 글을 쓸 때는 ‘오늘이 어제보다 나아졌나? 손색없이 나아갔나?’, 편집할 때는 ‘어제보다 1% 나아졌나? 우리 마음에 더 드나?’만 생각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구현되고 있는지만 신경 쓴 거죠. 관객도 제작사도 신경 쓰지 않고요. 그렇게 차분하게 만든 작품이었어요.”
장 감독의 이번 복귀작은 스릴러라는 점에서도 많은 시선을 끌었다. 물론 그를 드라마 ‘싸인’(2011)의 연출자로 기억하는 대중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개봉한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를 떠올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어도 충무로의 장항준은 코미디가 장기인 감독이었다.
“이게 정통 스릴러는 아니에요. 사실 장르라는 말도 호사가들이 붙인 거죠. 더욱이 스릴러는 이 영화의 도구일 뿐이고요. 예를 들어 장르가 그릇이라면, 음식은 영화의 본질이자 메시지죠. 물론 음식을 어디에 담느냐도 중요해요. 도구로서 쾌감도 있어야 하고 맞는 그릇을 쓰는 것도 능력이죠. 다만 빈 그릇을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전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넣고 싶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져 있다는 거요. 큰 영향을 미치든, 혹은 너무 미세해 알아차리지 못하든 다 이어졌다고 생각하죠.”
물론 ‘디테일의 대가’인 그가 단순 메시지 전달에만 신경 썼을 리 없다. 장 감독은 기획 단계부터 작은 부분 하나까지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 그간 접한 수많은 전문 서적을 떠올렸고, 영화 속 설정이 현실 가능한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자, 정신분석학자,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공부는 못했는데 책 읽는 걸 좋아했죠. 그게 이 작품에 이렇게 도움이 될지 몰랐을 뿐(웃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는 자주 찾아갔어요. 드라마 할 때 알던 분에게 가서 시놉시스를 보여줬죠. 이게 가능한 거 물었고, 충분히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러고 인물 구상하면서는 정신분석학자, 정신과 의사도 만났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깊이 토론했어요. 다행히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본업보다 신나게 해주셨죠, 하하. 그렇게 조언을 받아가면서 쭉 1년 동안 쓴 거죠.”
아내의 반응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장 감독의 아내는 드라마 ‘유령’(2012), ‘쓰리데이즈’(2014), ‘시그널’(2016) 등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 부부는 2010년 방송한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함께 썼고, ‘싸인’과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2016’을 통해 감독과 작가로 호흡을 맞췄다.
“재밌대요.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줬으니 고마워하라고도 했죠. 사실 VIP시사회 끝나고 뒤풀이하느라 작품 이야기는 많이 못했어요(웃음). 은희랑 공동 작업이요? 이젠 둘 다 머리가 커져서 못하죠. 하하. ‘싸인’ 때만 해도 제 뜻대로 했거든요. 그 후 텀이 있고 ‘무한상사’를 했는데 서로 스트레스를 받았죠. 은희도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서 자신의 확고한 생각이 생기잖아요. 전 감독이면서 창작자다 보니 연출만 못하는 거죠. 의견이 엇갈리는 거예요. 타협이 아닌 투쟁의 산물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이 딱 좋아요. 거리를 둔 채 응원하고 조언하고 작품에 빠져서 못본 걸 봐주고. 사리사욕이 없으면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죠(웃음).”
혹시 그렇다면 드라마 판으로 돌아갈 생각은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NO. 웃음기 가득했지만, 단호했고 확고했다. 이제는 본업인 이곳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제 에너지를 여기 집중하고 싶어요. 물론 드라마가 너무 재밌던 때가 있었죠. 근데 ‘싸인’, ‘드라마의 제왕’(2013) 하면서 갈증이 해갈됐어요. 반면 영화는 늘 하고 싶은 분야죠. 어릴 때부터 꾼 막연한 꿈이기도 하고요. 사실 보면 첫 작품이 유작인 감독이 많아요. 물론 예외도 있지만, 그만큼 다음 작품을 만들기 힘들죠. 그래서 대부분 감독의 목표는 같아요. 오래 하는 것. 앞으로 10년, 제가 몇 개를 더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요. 엎어지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많으면 네 개? 하지만 어쨌든 전 영화 현장에 남아서 계속하고 싶어요. 시나리오만 던져주고 기다리던 예전처럼 수동적으로 있지도 않을 거고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