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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지휘자의 시대를 연 음악계의 제왕,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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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3)

흔히 음악의 세계에서 19세기가 ‘피아니스트의 시대’라면, 20세기는 ‘지휘자의 시대’라고 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는 20세기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면서 혁신적이며 그리고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 넘쳐흐르는 지휘자였다. 음악가 중 살아생전 그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음악을 풀어나가는 탁월한 감각과 능력은 물론이고, 음악계에서의 독보적인 발언권, 레코드 음반 발매를 통한 클래식음악의 대중화 확산 등 가히 음악계의 황제로서 군림하였다. 오늘날 음악의 성인이라고 칭송받는 베토벤도 영향력 행사 면에서는 그를 앞서지 못한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한다. 그 모습이 나중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가 되었다. 원래 지휘는 단원과 눈을 맞추면서 교감을 이룬다고 하는데 그는 그것을 거부하였다. 언뜻 작위적인 자기연출 같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야말로 카라얀이 만들고 싶어 했던 ‘이상적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욕망의 상징적 모습이었다. 그는 생각 속의 이상적 오케스트라와 눈앞에 놓여있는 현실의 오케스트라를 합일시키려 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를 독재자라고도 불렀다. 베를린 필 단원들에 의하면 카라얀은 리허설을 할 때도 완벽을 추구했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일 없이 신사적인 분위기에서 리허설은 진행되지만, 완벽주의적 기질 때문에 리허설의 긴장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연주회 프로그램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등의 불만이 쌓이면서 단원들과의 사이도 벌어지게 된다. 이처럼 출세 지향적이며 독선적인 성격 그리고 친 나치 성향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카라얀이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과 엄청난 노력 덕분이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rebert von Karajan, 1908~1989)은 1908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피아노의 신동’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모차르테움(Mozarteum)에서 공부했다. 모차르테움은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 설립한 모차르트 음악연구 재단이다. 이후 비엔나 공대에 진학했으나 흥미를 잃고 결국 음악의 길로 들어선다. 1927년 독일 울름에서 지휘자로 데뷔하였고,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38~45년 동안 베를린 국립 오페라단도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역시 1955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에 오른 일이었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37년이었다. 그로부터 17년 뒤인 1954년, 당시 상임지휘자이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카라얀은 베를린 필의 지휘봉을 쥐게 된다.

1955년 베를린 필은 미국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0주년이 되는 1955년, 독일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서 열리는 이 공연은 당시 독일이나 미국 양측에 큰 관심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 과정에서 서독은 미국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때마침 열리는 이 순회공연은 서독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여론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그런 탓에 당시 아데나워 서독 수상도 이 순회공연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애초 이 순회공연은 당연히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54년 푸르트벵글러가 갑자기 서거하면서 공연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베를린 필은 미국 순회공연을 이끌 지휘자로 카라얀을 선택했다. 카라얀은 이를 계기로 종신 음악감독직을 맡아 실권을 쥐게 된다.
1955년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에 취임한 카라얀은 베를린 필을 통해 ‘꿈의 오케스트라’를 실현하려 했다. 이후 카라얀은 20세기 클래식 제국의 황제로서 군림했다. 1989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부근의 아니프에서 사망할 때까지 연주와 지휘, 음반 녹음을 계속했다. 대부분 베를린 필과 빈 필을 지휘한 결과물이었다. 이들 두 악단은 카라얀의 절정기를 함께 한 최고의 파트너였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위자가 된 이후에도 행운이 이어졌다. 다음해인 1956년에는 고향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이 되어 4년간 재임하였다. 칼 뵘의 뒤를 이어 빈 국립 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도 취임하였는데, 1964년 이곳을 사임한 직후에는 다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측과 전권을 행사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두 번째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카라얀은 1967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을 창설하였다. 이는 바그너의 작품만이 공연되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과 사이가 틀어진 카라얀이 자신이 존경하는 바그너의 음악을 마음껏 지휘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카라얀이 잘츠부르크에서 무엇보다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작품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여름 음악제에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여름에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경쟁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름이 아닌 부활절 기간을 택하게 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하는 카라얀의 모습 <사진=이철환>

카라얀은 자신의 전임자인 베를린 필 지휘자인 푸르트벵글러를 훌륭한 음악가로 존경하였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는 카라얀을 극도로 혐오했고, 카라얀이 자신의 후임자가 되지 못하도록 다각도로 견제했다. 그래서 카라얀은 푸르트벵글러가 서거하기 전까지는 베를린 필과 빈 필을 거의 지휘하지 못했다. 빈 필 단원의 증언에 의하면, 푸르트벵글러는 빈 필 단원들에게 자신과 카라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할 정도로 반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1954년 11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서거하자 카라얀은 마침내 오래 염원해왔던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차지한다. 카라얀은 자신에게 어렵게 돌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베를린 필의 미국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 카라얀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왔다. 그러나 카라얀은 그토록 염원했던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위중한 어머니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카라얀은 훗날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살인이라도 저질렀을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카라얀은 세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1938년 오페레타 가수인 엘미 홀게호프와 했는데 얼마 못 가 1942년 이혼했다. 그리고 이혼 후 바로 두 번째 결혼을 한다. 상대는 유태계 혈통을 지닌 안나 마리아 아니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봉틀용 실을 생산하는 사업가였다. 아니타와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무난했지만, 아니타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1958년 이혼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프랑스의 모델 출신인 엘리에트 무레(Eliette Mouret)와 세 번째 결혼을 하였다.
카라얀보다 27세 연하인 엘리에트는 17세 때인 1951년 카라얀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1958년 카라얀과 결혼 이후 두 딸을 낳았다. 엘리에트와의 세 번째 결혼은 적어도 외부에 비춰진 모습으로는 화목하게 유지되었고, 엘리에트는 비록 음악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었지만 카라얀을 열심히 내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결혼생활은 카라얀의 남은 여생동안 지속되었다. 그녀는 1989년 남편 타계 이후 음반과 영상, 각종 기록을 정리하는 '카라얀 재단'을 운영하며 살았다. 카라얀의 전 부인 아니타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얀 음악인생에 오점이 있다면 나치와의 협조관계였다. 1933년 나치에 입당하고 1934년 아헨 독일가극장의 음악감독이 된다. 카라얀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히틀러가 보는 가운데 자작 《영웅소나타》를 초연하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카라얀을 대표적인 신진 지휘자라고 선전했다. 그러다 둘째 부인 아니타가 유태계라는 점 때문에 나치와 거리가 생겼고, 전쟁 말기에는 아니타와 함께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서 종전 때까지 머물렀다.
종전 후 귀국한 카라얀은 1948년 연합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무혐의를 인정받아 지휘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작 스턴, 이작 펄만 등 상당수 유태계 음악가들은 그와의 공연을 거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약 2년 동안 연주활동이 제한되었는데, 그 기간 카라얀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 카라얀에게 구세주로 나타난 이가 바로 음반회사인 EMI의 프로듀서인 월터 레그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카라얀을 주목해 왔던 레그는 미래에 녹음할 연주들에 대해 미리 선지불하는 형식으로 카라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었다. 얼마 후 다른 음반사인 독일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 데카(DECCA)도 카라얀과 계약을 맺었다. 그가 취입한 음반타이틀은 1천개에 이르고 1억 2천만 장이나 팔렸다. 이리하여 카라얀은 연주회 현장 음악시대에서 레코드 음악시대를 새로이 열어나가게 된다.

천하의 카라얀도 만년 들어서는 베를린 필에 대한 장악력이 다소 떨어지고 있었다. 관악기 연주자 선정 과정에서 수차례 단원들과의 이견이 노출되었다. 또 자신의 후임 선정 과정에서도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악단장인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을 지지했으나, 카라얀 퇴임 후 단원들이 민주적인 투표방식을 통해 상임지휘자로 선출한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였다.
1987년 1월 1일에는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는데, 이를 이유로 1986년 베를린 필의 송년음악회를 지휘하지 않아 베를린에서의 여론이 악화되었다. 1988년에도 건강 악화를 이유로 베를린 필 공연 지휘를 취소해 놓고 그 다음날 일본 투어를 위해 출국했는데, 이 일도 커다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1989년 4월 건강상의 이유로 베를린 필의 종신 상임지휘자 직을 사임했다. 20세기 음악계의 황제이자 독재자로 불리던 그도 1989년 7월 1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고향 잘츠부르크에 묻혔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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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 논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최슬아 숭실대 교수는 29일 "북한이라는 호명이 상대방을 한반도의 일부처럼 위치시킨다면 조선이라는 호명은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북한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온정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불안을 낮추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윤종빈)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 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 주제로 특별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후원했다.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식별 기능을 갖지만 정치적 호칭이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를 담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식 명칭으로 부르며 남쪽을 외국으로 재정의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토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을 갖고 최근 북한 '핵시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성경 "호칭은 분단 산물…'조선' 관계 전환 출발점"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이라는 호명은 비공식적·약칭적 표현이지만 분단 80년 동안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서 "북한을 계속 북한이라고 부르는 한 우리 안에 북한이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북한을) 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경향이 좀 있었다"며 "남과 북의 국가 정체성이 이미 상당히 공고화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통일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그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고 남북 주민이 통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 권은민 "국호 사용, 국가 승인 아냐…정치가 먼저, 법은 따라간다"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PRK'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국가 승인이나 정부 승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면서 "국가 승인은 정치적 행위이고 국가 의사 표시다.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가 승인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을 하면 정리가 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관계는 법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도 정치가 큰 틀을 규정하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1조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돼 있다"면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국호 사용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취지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당사자 표기는 상대방이 원하는 공식 국호를 불러주고 그것이 국가 승인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공장을 방문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03.12 yjlee@newspim.com ◆ 이동기 "독일도 경멸적 호칭 쓰다 공식 국호 전환…출발은 이름"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서독은 동독을 경멸적 표현으로 불렀지만 긴장이 격화되면서 더 큰 평화 정치에 대한 구상이 폭발했다"면서 "국제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평화 화해 논의가 공존에 대한 요구나 필요를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독일 정치권에서는 헤르베르트 베너 전독문제부(통일부) 장관이 가장 먼저 동독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며 "당시에는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줬다. 국제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내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칙 고수와 실용주의가 결합하는 모든 출발은 국호의 제대로 된 호명이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호칭 변경, 굴복 아닌 공존 가능성 넓히는 정치적 전략" 패널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조선 호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태경 성공회대 교수는 "젊은 세대에는 '둘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조선을 일종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 대한 자기 인정과 그들에 대한 인정이 같이 결합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국립부경대 교수는 "핵심은 인정과 통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실질적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과 제도, 정치 차원에서의 접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호칭을 바꾸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적대를 줄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넓히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hyun9@newspim.com 2026-04-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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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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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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