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업계 "물질당 등록비용 수억원…국내기업 보호수단 없어"
환경부 "안전성 확보 안되면 유통 안돼"
[세종=뉴스핌 이고은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 개정안에 대해 국내외 화학업계가 모두 반발하고 있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국내 화학업계는 우리기업 보호수단이 전혀 없고 유럽으로 국내기업의 돈이 흘러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고, 해외 화학업계는 반대로 화평법이 '무역장벽'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환경부 "기업 이익 위해 국민 건강 담보로 할 수 없어"
13일 환경부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의무 등록대상 화학물질을 현재 510종에서 7000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화평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법이 개정되면 내년 7월부터 시행되어 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화평법은 지난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전국민적으로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 현상이 일자 정부가 화학물질을 체계적으로 평가, 관리하기 위해 2013년 제정해 2015년부터 시행했다.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업체 스스로가 연간 1톤 이상 제조·수입하는 화학물질의 관리에 필요한 자료를 생산해 정부에 등록하는 것이 골자다. 위반시 법 50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미만의 벌금이 부과된다.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판매되는 모습 <사진=이형석 사진기자> |
이같은 화학물질 등록제도는 유럽연합(EU)에서 먼저 도입했다. 국내 화평법은 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벤치마킹했다. EU는 지난 2007년부터 해당 제도를 발효해 3만 종류의 화학물질을 등록대상으로 하고, 1500개 물질은 주의가 요망돼 허가를 받도록 하고있다.
정부는 유통량이 많은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시험항목을 많이 제출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적게 하는 등 기업의 이익에 따라 제도를 합리적으로 설계했다는 입장이다.
류연기 환경부 화학안전기획단장은 "화학물질 하나당 시험항목은 최대 47개지만, 47개 항목을 모두 시험해야 하는 경우는 전체의 15%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까지 등록된 20여종의 화학물질 중 가장 많은 비용이 든 물질이 1억 남짓"이라면서 "평균적으로는 등록비용이 20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국내업계 "자국기업 보호수단 없어" vs 해외업계 "무역장벽"
하지만 국내 화학업계는 물질당 등록비용이 많게는 4억~5억원에 달한다며 경영상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국내 화학업계는 화평법 개정안이 국내 기업의 권익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고 EU기업에 좋은 일만 시키는 제도라고 지적한다. EU의 REACH제도는 무역장벽의 측면이 존재했으나, 국내 상황에서 화평법은 오히려 국부 유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화학물질 제조·수입업체는 등록대상으로 지정된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증명자료를 생성하거나 이미 생성된 자료를 구매해야 한다. 시험자료 생성비용이 더 비싸기 때문에 보통은 국내 협의체가 자료소유권을 가진 해외 기업으로부터 자료참조권(LOA·letter of authorization)을 구매한다.
업계에서는 이 비용이 천차만별이라 예측하기 쉽지 않으며, EU 화학업체 측에서 부당한 값을 부르는 일도 잦다고 토로한다. 민간기업에서 화평법 대응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협의체에 판매할 때 보통 소유권 가격의 25%로 참조권 가격을 매기는데, 50%로 팔겠다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등 해외 화학업계는 우리 정부의 화평법 개정안이 '무역장벽'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자국 화학물질 관리제도가 국내 화평법보다 가벼운 미국은 화학물질협회 차원에서 조직적인 반기를 들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도 포착됐다. 미국은 화평법을 한국의 무역장벽으로 인식하고 개정협상에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공세에 나서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입법단계였던 2013년부터 화평법을 무역장벽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 같은 업계의 반발에 대해 류연기 단장은 "법의 취지는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은 물질은 유통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기업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국민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 물질을 계속 유통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뉴스핌 Newspim] 이고은 기자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