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취업 시장 형성
[뉴스핌=오채윤 기자] 불합리한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출신지나 가족관계, 학력 등의 요소를 걷어내고 진정한 실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이 취준생들에게 ‘자기소개서 압박’으로 돌아왔다.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됐다. 학력과 스펙을 안보겠다는 것이다. 332개 공공기관은 7월부터, 149개 지방공기업은 8월부터, 9월부터는 모든 지방 출자·출연기관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다.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이나 나이, 학점 등을 입사지원서에 적지 않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성적과 면접 등으로 채용하는 방식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은 서로 다른 양식의 이력서를 사용해 사진과 나이, 학력,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해외경험 등을 기본 정보로 요구한다. 1차 관문인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인성·적성 평가와 면접 전형을 통해 채용이 이뤄진다.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 [뉴시스] |
이런 가운데 기업들이 다른 변별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지원자들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변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또 다른 통과 기준을 수험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실제 한 기업은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적용한 후 A4용지 10매 가까운 양의 ‘논술 형식 자소서’를 요구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달 공고를 낸 주요 기업 가운데 무작위로 10개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확인해 본 결과 절반인 5개 기업의 자소서 분량이 4000자를 넘었다. 최대 8000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자소서 질문의 평균 글자 수 비교 [출처=인크루트] |
자소서의 방대한 분량 뿐 아니라 질문의 난이도도 높아지고 있다. 지원동기나 성장배경 등 단순한 질문이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보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질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외식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작성해보고,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해온 노력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기술하시오. 단, 아래와 같이 직접‧간접경험으로 구분하여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대졸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기업들이 실제로 지원자들에게 요구한 자기소개서 문제다. 이같은 질문은 취준생들의 진땀을 빼게 한다.
취준생 박모(27)씨는 “하루에 1만글자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다. 하루에 몇천자씩 써야하니 지친다”며 “자소서 쓰는데 도움을 주는 학원을 다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꼭 규정된 분량을 채워서 쓸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일단은 다 채워 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맞춰 기존 취업대비 학원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취업 대비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강의가 개설되는 등 새로운 취업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 아카데미 관계자는 “서류 지원 시 필요한 자소서와 이 외에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작성을 위해 포트폴리오 취업반도 진행하고 있다”며 “취업준비에 대한 흐름이 바뀌면서 준비하는 방법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오채윤 기자 (cha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