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중심 경영 안착 위해 리더십 공백 놔둘수 없어
[뉴스핌=최유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 속에 회사를 이끌어온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마저 사퇴를 결정하면서 리더십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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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
13일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부품(DS)부문 사업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2018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은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용퇴 의사를 밝혔다.
권 부회장은 조만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 의사를 전하고 후임자를 추천할 계획이다. 당장 공백이 되는 부품 사업 책임자는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권 부회장이 지원할 예정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에 이어 권 부회장까지 사퇴를 결정하면서 삼성은 사상 초유의 리더십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했지만 이를 이끌 선장조차 자리를 비우게 된 셈이다.
그간 권 부회장은 총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었다. 삼성그룹 각 계열사들은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자율 경영을 하고 있지만 '맏형'인 삼성전자가 그룹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아 권 부회장의 대외활동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권 부회장은 지난 6월 미국, 유럽 출장에 이어 공정위원장 4대그룹 간담회 참석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에 동행하며 민간 경제외교 활동을 펼쳤다. 그간 권 부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로는 잘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권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삼성그룹의 대내외 경영 보폭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진단이다. 때문에 권 부회장과 함께 각 사업부문을 총괄했던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과 신종균 IT·모바일(IM) 부문 사장의 역할이 당분간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커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사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최순실 사태' 여파로 사장단 인사가 전격 보류되는 등 1년 가까이 인사 시계가 멈춰선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사 적체가 길어지고 중요한 공백이 생긴만큼 최대한 빨리 후임 인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안팎에선 더 이상 리더십 부재 상황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팽배하다. 지금까지는 각 계열사와 사업부가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이어왔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인식이다.
권 부회장 역시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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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는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글로벌 경영 행보를 통해 사업 기회를 감지하고 투자의 큰 크림을 그릴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는 올 초부터 '올스톱'된 상황이다. 애플, 페이스북 등 세계 정보기술(IT) 거물들이 모이는 '선밸리 컨퍼런스'에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불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초청 '테크 정상회담'을 비롯해 스위스 다보스포럼, 중국 보아오 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소비자가전(CE) 사업을 총괄하는 윤부근 사장은 최근 국제전자전시회 'IFA 2017'에서 "경영 전략 수립은 실제 현장을 보고 듣고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며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리더들과 만나 인사이트(통찰력)를 얻고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데 (이 부회장의 부재로) 지금 이런 게 꽉 막혀 있다"고 토로했다.
꽉 막힌 경영 행보는 굵직한 투자 결정 지연으로 이어진다. 이 부회장이 직접 뛰며 성사시킨 9조원 규모의 하만 인수 이후 삼성전자의 M&A 시계는 멈춰있다.
윤 사장은 "인공지능(AI) 관련 업체 M&A를 추진하다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했다"면서 "사업 기회가 왔을 때 특정 상황과 관계없이 결행해야 하는데 제때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해 타이밍을 놓쳤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장기적인 전략을 짜는 역할은 이 부회장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 준비는 사실상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백 기간이 짧아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