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취향은 어디에 있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취향이란 있는 것일까’란 물음에서 서울디자인재단이 포럼을 진행했다. ‘취향은 어디에’라는 주제로 취미를 바라보는 동양과 서양의 시선과 현재와 과거를 아우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취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 마련됐다.
17일 서울 DDP 디자인나눔터에서 구병준 PPS 대표와 오세현 간송미술관 연구원이 취향을 테마로 강의를 진행했다. 구병준 대표는 ‘트렌드에 치우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특별함’을, 오세현은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편집매장 챕터원을 운영하는 구병준 대표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취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꾸려질 지와 관련한 여러 생각을 하다가 독특한 가게를 열게 됐다. 그게 리빙 관련 편집매장인 ‘챕터원’의 시작이었다. 그는 “저도 잘 몰랐다. 이게 내 취향인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그런데 비즈니스가 되니 확실히 내 취향인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구병준, 취향에서 소비가 일어나는 과정
그는 시장에서 소비가 일어나는 취향에 이야기했다. 크게 네 가지 키워드로 나눴다. 무형의 공유, 유형의 사유, 콜렉트, 셀렉트다.
연사로 초청된 오세현 연구원과 구병준PPS 대표. 포럼 모더레이터로 온 최태혁 디렉터 |
먼저 ‘무형의 공유’와 ‘유형의 사유에’ 대해 설명했다. ‘무형의 공유’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다. 지식과 콘텐츠와 같은 무형의 것이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구분이 없이 빈번하게 공유되는 것이다. ‘유형의 사유’는 보이지 않은 것이 보이면서 판매와 소비가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보니 욕심이 생기고 소유와 관련한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유형이 자연물에서 인공물로 바뀌면서 사유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콜렉트와 셀렉트의 의미도 중요하게 바라봤다. 구 대표는 “콜랙트(Collect)와 셀렉트(Sellect)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비즈니스에서도 다르게 전개된다”라고 구분했다. 구 대표는 “콜렉트는 수집이다. 1부터 10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것들의 집합이다. 객관적으로 모아 그룹을 만드는 것이라면, 셀렉트는 여러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선택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형과 무형, 무형, 셀렉트, 콜렉트를 이번 강의의 키워드로 내세우며 “두 가지 단어의 조합으로 제 3의 변수가 일어난다. 이는 비즈니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수집된 공유’는 거시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 박물관과 재단에서 이뤄진다. ‘수집된 사유’는 물건의 이야기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갖고 판매를 하는 산업이나 갤러리에서 통한다. ‘선택된 공유’는 즐겨야 할 비즈니스를 만들고 트렌드를 만든다. 이것이 브랜드(Brand)다. ‘선택된 사유’는 개인적(Private)이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
DDP에서 열린 '취향은 어디에' 포럼을 찾은 사람들 |
그는 실용적인 콘텐츠와 여유가 만나면 이는 소비로 이어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게 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고가의 비행료를 탑승한 승객에게는 고급의 서비스가 주어진다. 이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와 같은 편리함을 나누고 싶은 그룹이 생기면서 이른바 ‘VIP 서비스’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또 3만불 시대를 넘어서면 식물산업, 주거 및 생활관련 산업으로 확대된다. 2010년 이후 이케아(IKEA)가 트렌드화 된 것도 같은 의미다. 4만불 이상이 되면 여가 및 취미 생활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다. 서핑 보드가 최근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예도 이에 포함이 된다.
이와 관련한 예도 제시했다. 그는 ‘슈프림(Supreme)과 루이비통 꼴라보’로 탄생된 ‘슈프림 벽돌’은 판매보다 ‘문화’에 집중한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100만원 짜리 벽돌이 잘 팔리게 된 것은 소비자들이 문화를 사게 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현 소비자인 50대, 60대, 70대에서 미래의 장기 고객이 될 수 있는 20대, 30대 소비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슈프림은 20, 30대가 좋아하는 브랜드다.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슈프림 매장은 한 가운데가 비워져있고 벽쪽에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들어와 쇼핑할 수 있는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불리(Buly), 몽클레르(Moncler)가 성공하게 된 사례도 전했다. 불리는 과거 프랑스 왕실에 납품되던 화장품 브랜드였지만 사라진 기업이었다. 이 이야기를 아는 젊은 투자자들이 모여 불리 브랜드를 샀고 현대의 디자인을 입혀 재가공해 소비자들이 알아주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몽클레르 역시 최초로 패딩을 만든 기업이었지만, 존재하지 않은 기업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한 투자자들이 모여 몽클레르 브랜드를 재탄생시켰다.
끝으로 구 대표는 향후 브랜딩보다 프라이빗한 공간과 물건이 더욱 관심을 끌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불과 일본에서 10년 전만 해도 체인보다 개인 카페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지금 한국이 그 상황에 왔다. 체인점이 존재하고 체인점을 싫어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며 “공유, 사유, 콜렉트, 셀렉트에서 취향으로 어떻게 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현, 취향을 조선시대 '아취'로 본다면?
간송미술관 오세연 연구원은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의 힘’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취향에 대해 “역사속에서는 취향이란 단어가 많이 쓰이고 여러 버전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중에서도 그는 아취(雅趣)에 주목했다. 아취는 속되지 않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아취 행위에 대해 그는 “향을 사르고 거문고와 바둑판을 곁에 두고 정원을 경영하고 화초나 수목을 가꾸고. 벗들과 모임에서 담론, 산수유람, 척독(편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세속적이고 실용성과 거리가 있고 벗들과 동행했다고 덧붙였다.
정선의 ‘독서여가’로 조선시대의 '취향'에 대해 설명하는 오세현 연구원 |
그는 정선의 작품으로 아취에 대한 설명을 더했다. 정선의 ‘독서여가’는 그의 자화상으로 평가되는 작품인데, 그의 일상에서 여유로움이 느낄 수 있다. 그가 있는 방 안에는 책이 많이 놓여 있고 그가 바라보는 것은 바깥에 놓인 화분 두 개다. 쉬는 시간에 작약과 난초를 보는 그다. ‘인곡유거’에서는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하게 정원을 가꾸는 그의 일상에서 아취를 볼 수 있다.
‘적재제시’에서는 양반이 친구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양반의 집에서 고용된 머슴, 종으로 짐작되는 이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생선이다. 이를 바로 받지 않고 양반은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다. ‘시화환상간’에서는 겸제 정선과 그의 친구인 이병연이 시와 그림으로 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화환상간’은 말 그대로 시와 그림을 맞바꾸며 감상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돈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오세현 연구원은 “취향에서 아취 주목한다. 실용성과 경제적인 것과 다른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세현 연구원은 조선시대에는 지배와 피지배계층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이끄는 주체가 있었다. 그는 현재는 소비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것이 나눠질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맹목적으로 소비의 주체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남과 더불어 나를 키워가는 정신의 지극한 경지를 탐하는 취향을 가져보길 바란다”며 “오감만 만족시키는게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지극한 경지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