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1997년 영화 ‘아나키스트’(2000)를 준비하면서 사진 한 장을 접했다. 사형 선고를 앞둔 남녀가 포개 앉은 한 장의 흑백 사진. 카메라를 응시하는 남자의 한 손은 턱에, 그리고 또 다른 손은 여자의 가슴 위에 있다. 여자는 무심하게 책을 본다. 남자는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 여자는 그의 동지이자 연인 카네코 후미코다.
시발점이 됐다. 이준익 감독(58)은 이 괴사진에서 아나키스트의 본질을 읽었다. 영화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단순 호기심만으로 출발할 수는 없었다. 완벽히 알고 온전히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역사관과 세계관, 그리고 사회관을 구축하는. 그 과정에서 ‘동주’(2016)가 먼저 탄생했다.
“‘동주’를 먼저 하면 정리가 될 듯했어요. 그래서 만들었죠. ‘동주’로 살짝 문틈을 연 뒤에 ‘박열’로 활짝 들어간 거예요. 물론 ‘동주’와 ‘박열’은 달라요. 윤동주는 시대와의 불화를 내재화시키는 인간입니다. 내재된 것은 시로 남겼고요. 반면 박열은 시대화의 불화를 외재화시켰죠. 말하자면 이란성 쌍둥이랄까요. 하나는 남자고 하나는 여자인데 누가 같다고 하겠어요. 그 쌍둥이를 두고 남자가 낫다, 여자가 낫다 하는 것도 이상하죠(웃음).”
그렇게 20년을 공들여 마침내 세상에 나온 ‘박열’. 이준익 감독은 그 영화 오프닝에 가장 먼저 ‘역사적 사건과 90% 이상 일치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문구를 넣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는 의미. 실제 이준익 감독은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을 중심으로 후세 다츠지의 ‘운명의 승리자 박열’, 박열 평전, 가네코 후미코 자서전, 그리고 아사히신문 기사까지 모두 검토해 영화를 만들었다.
“고증의 영역을 세 가지로 정리했어요. 첫째는 인물의 실존성. 굉장히 엄격해야 해요.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도 허구여서는 안 되죠. 두 번째는 사건의 사실성. 인물이 맞이하는 사건이 사실이어야 하죠. 마지막은 시기와 날짜. 영화 장르 특성상 시기와 날짜는 단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순서를 바꾸면 안 되죠. 그건 의도를 갖고 재구성한 거니까요. ‘박열’은 이 세 가지 조건을 90% 맞췄습니다. 그럼 안 맞춘 10%는 뭐냐. 저도 모르겠어요(웃음). 다 맞춰서. 아마 어디에도 기록돼있지 않았던 그들의 일상 정도가 아닐까요.”
고증을 거친 후에는 균형 잡기에 들어갔다. 사실 ‘박열’은 키워드를 ‘균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발란스 잡는 게 중요했다. 박열과 후미코를 시작으로 그들의 사랑과 사상, 영화적 메시지와 재미 등 모든 것에 균형이 필요했다.
“맞아요. 발란스 잡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특히 나의 자의식을 지나치게 반영해서 메시지를 강요하려고 하면 균형 잡기가 쉽지 않죠. 전 자의식을 메시지로 만드는 게 가장 큰 방해라고 생각해요. 싹 거둬내고 온전하게 그 시대, 박열과 후미코를 통해서 그 시대를 균형 있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죠. 상업적 성취를 위해서 조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건 단 한 장면도 없었어요.”
인터뷰 동안 이준익 감독은 여러 차례 박열은 사형을 ‘쟁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오로지 이성과 논리로 일본 제국 사법체계를 따르면서 끝내 사형 선고를 받아냈기 때문. 그 역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다루며 이 지점에 집중했다. 고로 이준익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관점을 바꿀 줄 알아야 성숙할 수 있어요. 성장은 자의식을 키우는 거고 성숙은 타인의 의식을 염두에 두는 거죠. 식민지를 보는 성숙한 관점은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일제강점기 영화, 문학, 역사를 볼 때 더 이상 과거의 프레임, 즉 감정적 대응에 갇혀있으면 안 돼요. 사실 지금도 다들 그렇게 하죠. 하지만 우리가 감정적으로 그들을 공격하면 그들도 감정적으로 대할 겁니다. 식민지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하는 되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목표였죠.”
그에게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오히려 ‘박열’로 하여금 머리가 더욱 복잡할 뿐이라고 했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관의 사춘기를 맞이한 거라고 반색했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즐기라 조언했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관의 사춘기 건너는 자만이 반드시 성숙한 역사관을 갖게 될 거라 확신했다.
“저 역시 역사적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걸 어딘가에 배설해야 했죠. 그게 영화였어요. 그렇게 영화들이 만들어진 겁니다. 메시지를 던져야겠다, 청춘들에게 역사관을 다시 심어주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제가 교조주의자도 아니고(웃음). 그냥 제가 보고 싶어서 만든 거죠. 확인하고 싶어서. 감독이 최초의 관객 아닙니까. 다만 남의 돈으로 찍은 거니까 같이 봐야 하는 거고, 돈값을 해야 하는 거고. 하하. 또 다루고 싶은 인물이요? 많죠. 얼마나 많겠어요. 하지만 말해줄 수 없어요. 영업 비밀이야(웃음). ‘짠-’하고 나와야 재밌잖아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