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을 시작한 SBS '귓속말'(왼쪽)과 OCN '터널' <사진=SBS, OCN 홈페이지> |
[뉴스핌=김세혁 기자] 안방과 극장가의 범죄물 인기가 심상찮다. 극장가는 물론이요, 장르물 편성이 극장에 비해 덜 자유로운 안방에서도 범죄물이 연이어 편성돼 눈길을 끈다. SBS와 OCN이 각각 ‘피고인’과 ‘보이스’ 후속으로 ‘귓속말’과 ‘터널’을 편성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극장가에선 ‘프리즌’ ‘원라인’ 등 여전히 범죄물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범죄물에 열광했던 마니아들은 이제 한국에도 명품 수사물이 등장할 때가 됐다며 기대하고 있다.
■눈에 띄는 범죄드라마의 인기…파격 릴레이 편성
SBS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피고인’ 후속작으로 ‘귓속말’을 전격 편성했다. 지난 27일 첫 방송한 ‘귓속말’은 멜로를 지향하지만, 그 내용이나 소재는 다분히 범죄물에 치우쳐 있다.
‘귓속말’은 법률회사 태백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한때 적에서 동지로, 그리고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인생과 목숨을 건 사랑을 통해 법비(법을 이용한 도적무리)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내용이 범죄물과 맞닿아 있다.
일단 출발은 괜찮다. 전작이 기록한 20%가 훌쩍 넘는 시청률엔 못 미치지만, 동시간대 방송하는 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며 동시간대 톱을 다투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7일과 28일 방송한 '귓속말'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각각 13.9%, 13.4%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가 이보영과 이상윤의 로맨스에 근간을 뒀다지만, 이를 무르익게 하는 배경이나 소재는 모두 법과 범죄, 비리 등이다. ‘펀치’의 연출과 극본을 맡았던 이명우PD와 박경수 작가가 만난 작품이기에 법정드라마로서 강점도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전작 ‘피고인’의 주인공 지성의 아내 이보영이 연달아 출연하는 점도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이다.
OCN이 지난주부터 방송한 ‘터널’은 본격 범죄물이다. 대한민국 강력반 형사가 여성만 노린 연쇄살인사건을 쫓던 중, 30년 뒤 세상으로 타임슬립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보이스’가 범죄현장의 소리에 집중한 장르 범죄물이었다면, ‘터널’은 타임슬립을 도입해 차별화를 꾀했다. 물론 영화 ‘살인의 추억’, 드라마 ‘시그널’의 짬뽕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아직 2회만 방송된 만큼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사뭇 기대된다.
더욱이 주목받는 것은, ‘터널’로 OCN이 범죄물 명가 이미지를 한층 강화할 수 있느냐다. OCN은 이미 ‘나쁜녀석들’ ‘38사기동대’로 이어지는 범죄수사물 명가로 두터운 팬층을 자랑한다. ‘터널’이 연타석 홈런을 칠 경우, OCN은 비교할 수 없는 범죄물 원톱 채널로 등극할 전망이다.
봄 극장가를 점령한 범죄물들. 사진 위부터 '프리즌' '원라인' <사진=쇼박스, NEW> |
■봄은 멜로 성수기?…No! 극장가 점령한 범죄물
범죄물의 강세는 극장가도 마찬가지다. 31일 오전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한석규와 김래원의 범죄물 ‘프리즌’이 당당하게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미녀와 야수’가 2위를 달리며 멜로 드라마가 이름값을 했지만 ‘원라인’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 ‘보통사람’ ‘데스노트:더 뉴 월드’ 등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포진한 영화 대부분이 범죄액션 혹은 수사물들이다.
CGV 통계에 따르면, 범죄물(범죄 및 수사, 추리, 스릴러 등)에 대한 영화팬 선호도는 지난해 기준 48.6%로 멜로와 로맨스(23.4%)를 압도했다. 실제 지난해 가을부터 올초까지 '스플릿' '마스터' '판도라' '공조' 등 범죄물이 주류를 이뤘다. 이 같은 상황은 올봄도 마찬가지. 3월 개봉작을 살펴보면, ‘프리즌’ ‘보통사람’ ‘데스노트:더 뉴 월드’ ‘원라인’이 박스오피스를 꽉 쥐고 있다. 4월 개봉 예정작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이나 ‘패트리어트 데이’ ‘시간위의 집’ 등 범죄액션이나 스릴러가 주류를 이룬다. 이선균의 코믹 수사물 ‘임금님의 사건수첩’ 역시 기대를 모으는 작품 중 하나. 이에 반해 멜로나 드라마는 ‘다시 벚꽃’ ‘나의 사랑, 그리스’ ‘어느날’ 등으로 적은 편이다.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해외 명품 범죄물. 사진 위 왼쪽부터 갈릴레오 시즌2, 파트너 시즌15, 한니발, 마르코스 <사진=후지TV, 아사히TV, AXN, 넷플릭스> |
■팍팍한 세태 반영한 범죄물 상한가…한국형 명품이 필요하다
탄탄한 전개와 강렬한 반전, 속시원한 통쾌함으로 승부하는 범죄물은 팍팍한 세태와 맞물려 전성기를 맞았다. 극장관계자들은 새봄 극장가를 범죄물이 점령한 이유를 꽉 막힌 답답한 시국으로 봤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비상시국을 바라보는 국민들 정서상, 멜로나 드라마보다는 범죄물이나 액션, 스릴러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성기를 맞은 한국형 범죄물의 미래다. 아무리 안방과 극장가에 범죄물이 넘쳐난다지만 토종 명품 범죄물이 탄생하지 않는 한 마니아들의 관심을 계속 잡아두기 어렵다. 이 때문에 명품 드라마의 시리즈화 역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일례로 외국의 경우, 명품 범죄물을 시리즈화해 톡톡한 재미를 본 사례가 많다. ‘브레이킹 배드’ ‘덱스터’ ‘본즈’ ‘고담’ ‘한니발’ ‘나르코스’ 등 미국 드라마 시장만 봐도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트라이앵글’ ‘파트너’ ‘시효경찰’ ‘갈릴레오’ ‘히어로’ 등 일본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명품 범죄물들은 지나치게 어둡고 잔인한 틀에 갇히지 않고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히어로’나 ‘갈릴레오’는 주인공 캐릭터를 흥미롭게 설정했고 남녀간 로맨스를 살짝 추가해 팬을 양산했다. 연쇄살인범을 동원해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덱스터’나 저명한 심리상담가이면서 인육을 즐기는 살인마 이야기 ‘한니발’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드 범죄물은 정치나 SF까지 융합하면서 보다 많은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외국 분위기에 비해 유독 로맨스나 멜로, 드라마가 강세였던 우리나라에서 과연 범죄물이 계속 전성기를 이어갈 수 있을 지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려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