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는 김재욱, 엄기준, 이준호(왼쪽부터) <사진=뉴스핌DB, 뉴시스> |
[뉴스핌=황수정 기자] 드라마가 끝나도 사람들의 기억 속엔 강렬했던 캐릭터가 남는다. 특히 시청률이 부진했던 드라마 일수록 작품 그 자체보다는 캐릭터, 그리고 이를 연기한 배우만 재평가 받는다.
최근 종영한 MBC '미씽나인'에서는 최태호 역을 맡은 최태준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에 앞서 배우 이유리는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 역으로 연기대상을 받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과거 악역을 연기하면 사람들에게 등짝을 얻어맞던 때와 달리, 요즘에는 주인공보다 더욱 사랑받는 모양새다.
'보이스'에서 섬뜩한 사이코패스 모태구를 연기한 김재욱 <사진=OCN '보이스' 캡처> |
지난 12일 종영한 OCN 금토드라마 '보이스'에서도 사이코패스 모태구 역을 연기한 김재욱이 회자됐다. 모태구는 살인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로, 김재욱은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캐릭터를 표현했다. 목소리, 표정, 몸짓 하나만으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재벌 2세로 매회 수트를 입고 냉철하지만 우아한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김재욱은 '섹시한 쓰레기'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김재욱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에서 중성적인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연기력은 안정적이었지만 이렇다할 '펀치'가 없었던 그에게 '보이스' 모태구는 완벽한 연기 변신이자 인생캐릭터가 됐다. 특히 김재욱은 최소한의 움직임, 자제하는 웃음소리, 마지막 순간의 폭주까지, 장혁과 이하나를 뛰어넘는 강렬한 존재감을 선사했다는 평가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서도 엄기준이 주목받고 있다. 엄기준은 차명그룹 부사장 차민호 역으로, 죽은 형 행세를 하며 자신의 비밀을 지키고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를 연기 중이다. 특히 방송 초반 지성(박정우 역)과 엄기준의 하드캐리는 시청률 1위의 일등공신이었으며, 드라마 연장 결정 이후 계속되는 '고구마' 상황에서도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게 만들었다.
'피고인'에서 역대급 악역 차민호를 연기하는 엄기준 <사진=SBS '피고인' 캡처> |
극중 차민호는 형의 죽음을 기회로 자신이 형 행세를 하고, 14일 방송에서는 아버지가 쓰러졌는데도 이를 방관하며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급급했다. 천륜을 져버리는 역대급 악역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킨 건 엄기준의 연기력 덕분. 엄기준은 날카로운 눈빛과 숨길 수 없는 광기로 모두를 기죽이는 포스를 발산, 섬뜩한 차민호를 완성했다.
김재욱이 연기한 모태구와 엄기준이 연기한 차민호는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을 위한 악역이 아닌 가정 폭력, 열등감 등 과거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감정이입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모태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살인을 목격한 후 사이코패스 기질이 드러났고, 차민호는 형에 대한 열등감, 아버지의 차별로 엇나가게 됐다. 그들이 악역이 될 수밖에 없는 복합적인 상황 설정으로 더욱 설득력을 높였다.
'김과장'에서 비열하면서도 코믹한 서율을 연기 중인 이준호 <사진=KBS 2TV '김과장' 캡처> |
반면 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서율 역의 이준호는 조금 결이 다른 악역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율은 중앙지검 검사에서 TQ그룹 재무이사로 발탁된 인물로,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데다 야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자칫 전형적인 악역으로 진부할 수 있는 캐릭터를 인간적인 면모, 코믹함 등을 더해 매력있게 그려냈다.
특히 이준호의 서율은 완벽하지 않아 더욱 사랑받고 있다. 부와 권력을 위해 비열한 행동을 일삼지만 남궁민(김성룡 역)에게 계속 당한다. 분명 나쁜 놈이 맞는데 남상미(윤하경 역) 앞에서는 속내를 밝히며 처량해진다. 악랄하지만 2%가 부족한 허당미와 랩을 하는 듯한 스웨그 제스쳐 등 코믹함으로 망가지기까지 하며 색다른 악역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못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악역. 높아진 인기만큼 다채로운 악역들의 등장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또다른 매력 포인트다. 사이코패스나 재벌 2,3세, 검사의 권력욕 등 사회 구조적 문제도 은연 중에 담고 있어 집중도도 높아지고 있다. 점점 성장하고 변화하는 악역, 그 악역을 더욱 잘 살리고 있는 배우들의 등장까지, 바야흐로 악역 전성시대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