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 사진 이형석 기자] “2년만 있으면 20대가 돼요. 걱정보단 기대가 크죠.”
아역부터 시작해 꽤 오랜 연기경력을 자랑하는 배우 김향기(18)가 ‘눈길’로 관객과 만난다. 삼일절 개봉하는 ‘눈길’은 일제강점기,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나정 감독과 유보라 작가가 의기투합한 ‘눈길’에서 김향기는 또래 친구 김새론과 함께 각각 종분, 영애를 열연했다.
‘눈길’ 속 종분은 수줍음 많은 시골 소녀다. 동생과 감자 하나를 놓고 싸울만큼 가난하지만 정이 많고 늘 밝다. 세련되고 교육도 잘 받은 영애가 부러운 종분은 그의 친오빠를 짝사랑한다. 영애는 오빠 수준을 따라가려면 종분이 한참 뒤떨어진다며 핀잔을 준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전 늘 꼬질꼬질해요. 반면 새론이는 깨끗한 옷에 학교도 다니고 콧대가 높죠. 근데 연기하면서 부럽진 않았어요. 원래 다른 역할을 동경하진 않아요. 연기일 뿐이잖아요. 종분이가 영애를 바라보는 역할이다 보니 오히려 더 지저분한 옷을 찾아 입었어요.”
영화 개봉에 앞서 KBS에서 먼저 선을 보인 ‘눈길’은 김향기가 선뜻 택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역사적 아픔을 다룬 영화라 의미가 컸지만, 여전히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부담도 됐다.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죠. 연기 역시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근데 그만큼 중요한 얘기고, 한 분이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현재까지 피해자들이 생존해 계시고 일제의 만행을 뒷받침할 증거도 충분하잖아요.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연기했죠.”
이나정 감독은 10대(김향기는 이 작품을 16세 때 찍었다) 배우들을 최대한 배려했다. 위안부 문제를 다뤘기에 끔찍한 신이 등장할 법했지만 최대한 폭력적인 부분을 덜어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의 아픔만은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애썼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부담이 됐는데 감독님이 힘들어할까 정말 많이 배려해줬어요. 같은 여성이라 느끼는 점이 비슷하기도 했고요. 덕분에 촬영하면서 차차 나아졌어요. 실제로도 친구인 (김)새론이와도 많이 의지했죠.”
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영화 속 시점이 한겨울인 탓에 물리적인 어려움도 따랐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는 촬영 가운데서도 김향기는 자신을 태우고 먼 거리를 이동했던 매니저를 먼저 걱정했다.
“한겨울이 배경이라 겨울에 촬영했어요. 얇은 한복만 입고 찍느라 고생깨나 했죠. 근데 한밤중에 철원에서 소록도까지 절 태우고 달린 매니저 언니가 더 힘들었죠. 장거리 밤운전이 어디 보통 일인가요.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워요.”
작품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김향기. 또래 아이들처럼 위안부 문제를 막연하게 바라봤던 그는 촬영 뒤 분명한 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전엔 저나 친구들이나 이 문제를 스스로 찾아보고 고민하는 경우는 적었죠. ‘눈길’ 찍으면서 자료도 찾아보고 더 알게 됐어요. 기부 사이트에서 물품을 구입하기도 했고요. 어려운 영화 찍어줘서 고맙단 친구 부모님 말씀엔 정말 뭉클했죠.”
3세에 데뷔한 김향기는 6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10대지만 경력만 따지면 10년이 훌쩍 넘는 중견배우(?)다. 여전히 앳된 얼굴에 선한 인상으로 주로 당하는 역할을 맡아온 그는 연기변신에 대한 생각도 들려줬다.
“다양한 배역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는데, 여성스러운 변신에 대한 압박은 없어요. 그런 역할은 아직 시간이 많잖아요. 그것보단 안해본 역할은 다 해보는 게 배우로서 욕심이에요. 못된 역할이나 까칠한 역이 탐나는데 예전부터 다중인격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에너지 소모가 많고 힘들겠지만 꿈이자 욕심이에요. ‘킬미 힐미’ 속 지성 삼촌처럼요.”
2년만 있으면 20대가 되는 김향기는 성인연기자로 넘어가는 데 대한 압박보단 설렘이 많다고 답했다. ‘어린 배우’에서 ‘젊은 배우’ 소리를 듣게 될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며 밝게 웃었다.
“떨리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여러가지 기분이 들어요. 2년만 있으면 20대니까 우선 고민이 되죠. 이 시기를 잘 넘어가 성장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근데 강박까지는 아니에요. 오히려 걱정보단 기대가 많죠. 그 나이에 맞는 역할 하면서 배우로서 많이 배우고 긍정적으로 20대를 맞게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