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언젠가 인터뷰에서 ‘눈동자 방향’이 아쉬웠다던 그가 이번엔 더 황당한 말로 말문을 막았다. 촬영 중 갈비뼈에 금 간 아찔한 상황을 털어놓으며 “다치고 진짜 아팠을 때 감정이 0.5초 들어갔다. 배우로서는 의미 있는 신”이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연기가 제일 먼저인, 연기에 울고 웃는 배우 오정세(40)가 또 한 번 극장가를 찾았다.
지난 8일 개봉한 ‘조작된 도시’가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웰컴투동막골’(2005) 박광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단 3분16초 만에 살인자로 조작된 남자가 게임 멤버들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범죄액션물. 극중 오정세는 영화의 반전 키이자 핵심 인물 민천상을 연기했다.
“원래 다른 역할로 캐스팅됐어요.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오케이했죠. 근데 그때까지 민천상 역할이 공석인 거예요. 너무 매력 있는 캐릭터라 해보고 싶었죠. 물론 거론되는 배우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한다면 저보다 낫다는 것도 알았죠. 다만 감독님께 혹시라도 이 역할을 하고 싶으니 혹시라도 기회가 있다면 오디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했어요.”
오정세의 열정은 통했다. 결국 박광현 감독은 그의 캐릭터를 민천상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크랭크인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 오정세에게는 시간이 2주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비주얼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잡아가기 시작했다.
“왜소증과 탈모를 제안했어요. 그런데 제작비와 물리적 시간에 부딪혔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게 오타반점이었어요. 또 말라 보이고 싶어서 8kg을 감량했죠. 시간이 없어서 10일 동안 물만 계속 먹으면서 무식하게 뺐어요. 이마도 넓은 게 좋을 듯해서 머리를 깎았고요. 양복도 빅사이즈로 하되 원단은 비싼 거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게 어울릴 듯했죠.”
물론 외적인 부분만 신경 쓴 건 아니다. 민천상을 “장애와 결핍이 있는 친구”로 정의 내린 오정세는 박광현 감독과 조율해가며 민천상을 끊임없이 다듬고 수정해나갔다.
“표현도 일반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죠. 분노에서 화가 날 때는 뾰족한 화도 있지만, 민천상만의 화, 분노 표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했죠. 환호할 때도 단순히 ‘와~’이런 느낌이 아니라 조금 특이한 민천상만의 환호가 있을 듯했고요. 그래서 아이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렸죠.”
쏟아지는 아이디어에 민천상 캐릭터는 성공적으로 영화에 안착했다. 오정세는 이런 아이디어의 근원은 일상생활이라고 했다. 평소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을 자신만의 저장창고 안에 보관해 두는 거다.
“예를 들면 앞에 있는 사람이 얍삽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가 발견한 눈 밑에 점 하나 등 그런 것들을 저장해 놓는 거죠. 그게 어떤 영화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저장해 놔요. 물론 비주얼적인 게 아니라 상황적인 것에서도 많이 저장하죠. 특히 생각지 않은 대화 호흡 같은 걸요.”
빈틈없이 쌓아 올리는 오정세의 연기법. 이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매개체가 영화에서 드라마로 바뀌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시나리오 전체가 나온 후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방송 직전 대본을 받기 일쑤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드라마가 힘들었어요. 갑자기 변하는 것에 대한 버거움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예 접근 방식이 달라요. 영화는 1부터 100까지 나와 있으니까 대충의 그림을 그려놔요. 반면 드라마를 할 때는 굵직한 것만 잡아놓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놓죠. 전체적으로 영화보다 많이 열어놓고 작업해요.”
자신만의 연기법을 확실히 구축해 놓은 덕일까. 그는 요즘 ‘조작된 도시’와 함께 MBC 수목드라마 ‘미씽나인’으로도 대중을 만나고 있다.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 덕에 그의 연기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색깔이 규정지어지는 건 배우라는 직업의 어쩔 수 없는 흐름이죠. 다만 전 그게 무채색이길 바라요. 이왕이면 한 가지 색에서 규정되고 싶지 않죠. 여러 가지로 기억되고 싶어요. 악역은 악역대로 코믹할 때는 또 코믹하게, 그 작품에 맡게끔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를 좋게 찾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요즘 쏟아지는 연기 호평을 보느냐고 물었다. 오정세는 “덕분에 기분이 좋다”면서도 이내 “그저 묵묵히 내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근데 또 결국은 제가 가는 이 길은 우여곡절이 있을 거예요. 주연도 했다가 조연도 했다가 좋은 이야기도 들었다가 또 아니다가. 그래서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들뜨거나 상처받지 않고 그냥 쭉 가고 싶죠. 저 10년 전에도 재발견이란 이야기 들었어요(웃음). 그저 지금은 또 제 중심에서 묵묵히 가겠다는 거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저의 재발견이 나오지 않을까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프레인T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