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개의치 않는 트럼프…일본 환율조작국 딱지 경계
환율 문제 논의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수도
아베, 환율 양보시 지지층 흔들…물러서기 힘들어
[뉴스핌= 이홍규 기자] 글로벌 외환시장이 오는 10~11일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의 정상회담과 골프회동에 관심을 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환율을 갖고 장난질을 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일본의 환율 정책에 고강도 압박을 예고한 가운데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의 핵심 축을 흔들 수 있는 트럼프의 예봉을 피해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와 아베 총리의 정상 회담이 다음 며칠 간 외환 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번 주 회담을 앞둔 긴장과 불확실성으로 달러/엔 환율은 한 때 111엔대로 밀리기까지 했으나 이내 다시 113엔 대 후반을 회복했다. 그러나 외환 딜러들은 이같은 움직임은 '거짓된 평온함(false sense of calm)'이라고 지적했다.
(좌)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통신> |
◆ '동맹' 개의치 않는 트럼프…일본 환율조작국 딱지 경계
최근 몇 주간 외환 시장의 불확실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얼마든지 놀라게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한 층 심화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호주의 말콤 턴불 총리와 전화를 예고도 없이 중단했고 일본을 향해서는 당국이 "외환 시장에 장난질을 하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이 평가절하를 유도하고 있는 데도 "우리는 바보처럼 앉아 있기만 했다"며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외환 딜러들은 트럼프가 일본에 '환율조작국' 딱지를 붙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일본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명하지 않더라도 트럼프가 미·일 간 협상에서 일본을 환율 개입으로부터 저지하고 일본은행(BOJ)의 국채수익률 통제 정책을 제약할 수 있는 요구 사항을 제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공개된 미국의 무역지표는 이 같은 우려를 더했다. 일본은 독일을 제치고 미국이 작년 무역 적자를 본 국가 중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무역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4%였다.
브라운브라더스해리만의 마크 챈들러 외환전략가는 일본 기업들은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 (정책) 추진"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 환율 문제 논의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수도
일부 분석가들은 환율 문제가 '양날의 검'과 같은 이슈인만큼 이번 회담에서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양국이 관계 강화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면 시장은 오히려 안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MUFG의 데릭 하페니 외환전략가는 "양국 정상이 관계 개선에 대한 진심 어린 의지를 보일 경우 트레이더들에게 커다란 안도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엔화 매도를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환율 문제가 심도 있게 다뤄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씨티은행의 다카시마 오사무 외환전략가는 이번 회담에서 "이 문제가 어느 정도 깊게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아베 총리가 아시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핵심적인 양보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의 양보는 이미 진행 중이다. 아베 총리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주 고속철도 프로젝트 투자를 포함해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는 대규모 투자 패키지를 선물로 준비하고 있다.
다카시마 전략가는 "만약 트럼프가 환율 조작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요구한다면 이는 일본 정부가 (환시) 개입의 권리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 내각의 어떤 정책을 가장 높이 평가하느냐는 질문(아베 내각 지지자들 대상) <자료=아사히신문, BAML> |
◆ 아베, 환율 양보시 지지층 흔들…물러서기 힘들어
이에 대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야마다 슈스케 외환전략가는 "모든 위험은 미국과 일본간의 달러/엔 환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며 "만일 아베가 양보한다면 보수적인 아베 지지자들은 이를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주권 포기로 간주해 분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이는 그의 지지 기반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으며 상당한 엔화강세와 주가약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정치적 지지 세력뿐 아니라 아베노믹스의 지지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환율 제약이 논의 대상에 오르고 아베 총리가 한 발 물러서야 한다고 느끼면 미일 양국의 동맹은 보호주의 조치와 미군 철수와 같은 위협에서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는 결국 지정학적 위험을 고조시켜 엔화 강세를 촉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같이 아베가 양보와 반목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더라도 이는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아베는 환율에 대한 깊은 논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예상했다.
[뉴스핌 Newspim]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