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세혁 기자] "오직 태어나지 아니한 자만이 복이 있다."<매튜 프라이어>
인생의 잔혹함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베일을 벗었다. 아카데미가 주목하는 이 영화는 케이시 애플렉의 덤덤한 연기가 되레 눈물겨운 인생 드라마다. 뛰어난 작품성과 연기로 제89회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미리 만났다.
15일 개봉하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생기라곤 없는 사내의 팍팍한 인생사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의 일상은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같다. 기술은 좋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그는 매일 입주자 민원에 시달린다. 저녁이면 싸구려 맥주나 들이켜다 주먹질을 하기 일쑤다. 여자들의 은근한 눈빛 앞에서도 목석이 따로없다. 인간의 감정을 모두 잃어버린 삶. 심지어 형 조(카일 챈들러)의 부고에 병원으로 달려간 날도 그랬다. 싸늘하게 식은 피붙이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선 끝내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고향 맨체스터-바이-더-씨(미국의 지명이다)로 돌아온 리는 괴롭다. 형의 장례식 준비도 그렇거니와, 랜디(미셸 윌리엄스)로부터 연락이 오면서 혼란에 빠진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던 전처의 전화는 잊고 지내던 끔찍한 아픔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삶은 얼마나 잔인한가. 쉼 없이 객석을 짓누르는 이 영화는, 종극에 이르러 우리는 생을 버텨낼 의무가 있다고 무책임하게 등을 떠민다. 태어나지 않은 자만이 복이 있다고. 인생은 원래 잔혹한 것 아니냐며.
리의 삶은 고향에 사는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과 조우하면서 작은 변화를 겪는다. 리와 달리 일상이 쿨하고 활기 넘치는 패트릭은 보스턴으로 떠나자는 삼촌이 싫다. 형이 남긴 유일한 혈육과 어떻게든 잘해보려는 리. 그리고 삼촌을 피해 집에 남으려는 패트릭. 두 사람의 신경전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 같다. 형의 고깃배에서 어린 조카와 낚시하던 때가 자꾸 떠오르는 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상실과 삶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꽤 무겁고 아프다. 눈물이라도 터지면 속이 시원할텐데, 마냥 슬픈 것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없다. 배우들의 절제된 감정연기가 한몫 단단히 한 결과다. 보는 이의 감정을 움켜쥐고 끌고 가는 전개에 마음 한쪽이 계속 아리다. 우리 인생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기에, 눈을 감고 외면할 수도 없다. 케이시 애플렉의 무표정한 얼굴과 우울한 대사는 그렇게 2시간 넘게 객석을 꽉 틀어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면 인생의 무게감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아카데미가 주목한 작품이어서일까. 명배우 맷 데이먼이 제작한 이 영화는 상당히 좋은 지점을 몇 군데 갖고 있다. 특히 리가 지옥같은 과거를 떠올리는 신이 대단히 와닿는다. 극적인 분위기가 소용돌이치는 이 장면에서 제작진이 토마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Adagio in g minor)를 선택한 건 단연코 신의 한 수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