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배우 정우성은 신작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큰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작품에 함께해 준 후배들이 고맙다고. 맞다. 현 시국과 맞물리지 않았더라면, 사실 ‘더 킹’은 개봉 자체도 불투명했을지 모른다. 당시 정우성이 특정 후배를 지칭한 건 아니지만, 누가 뭐래도 이 말의 주인공은 배우 류준열(31)이다.
지난해 1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인기리에 종영했을 때, 세상 여심이 어남택과 어남류로 정확히 양분화됐을 때, 그는 ‘더 킹’ 출연 소식을 알려왔다. 하루가 다르게 인기가 치솟고, 러브콜이 물밀 듯 들어오고 있었다. 속된 말로, 이제 줄을 잘 타고 올라가는 일만 남았던 그때, 류준열은 이 작품을 잡았다. 신인에게는 썩은 동아줄이 될지, 튼튼한 동아줄이 될지 모를 줄이었다.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행보였다.
“이 영화로 뭔가 불이익을 당할 거란 생각을 하는 자체가 별로죠. 말 그대로 이건 영화잖아요. 전 오히려 영화 자체로 읽어서 되게 재밌었어요. 무엇보다 한재림 감독님 작품이라서 하게 됐죠. 감독님 작품을 너무 사랑하는 팬이었거든요. ‘응팔’ 끝날 때쯤 책을 준다고 했는데 이미 혼자 출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웃음). 그게 무슨 역할이든, 크든 작든 하고 싶었죠. 근데 아니나 다를까 책도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출연을 결정했죠. 영화로만 접근해서 그 외적인 것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더 킹’은 류준열의 첫 상업영화가 됐다. 류준열의 꿈의 감독, 한재림 감독이 직접 쓰고 만든 이 영화는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박태수(조인성)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류준열은 최두일을 연기, 거친 수컷의 향기를 풍긴다.
잠시 최두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이렇다. 목포 들개파의 이인자인 그는 박태수의 고향 친구로 언제나 박태수 대신 궂은일을 해결해준다. 하지만 권력의 세계를 엿본 최두일은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박태수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두일은 외로운 인물이죠. 남들은 다 변화하는데 두일인 변화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끝까지 밀고 나가잖아요. 물론 헷갈리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웃음),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죠. 그래서 더 외롭다고 생각했고, 전반적으로 두일의 외로움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그렇다고 해서 외로워 보이게 그린 게 아니라 인물 자체가 외로움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느냐의 문제였죠. 덤덤하게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준비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배역에 자신을 투영시켰다. 류준열의 어딘가에 존재할 최두일의 모습, 류준열과 최두일의 접점을 찾았다.
“다른 선배, 동료, 후배들은 자기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제 안에서 주로 찾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제 안에 있는 외로운 모습들을 찾기 시작했죠. 사실 제가 고민거리 같은 걸 표현하거나 말하지 않거든요. 그런 게 두일과 잘 맞아 떨어졌어요. 반면 전 후회는 하되 빨리 털어내고 다음을 준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 지점에서는 두일과 다르지 않나 해요.”
물론 아무리 제 안에서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직업이 주는 설정들이 그렇다. 더욱이 최두일의 직업은 조폭. 하지만 류준열은 최두일을 그리기 위해 조폭을 참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준비 과정에서 조폭을 보지는 않았어요. 감독님 말처럼 우리 영화에서는 조폭이 검사 같고 오히려 검사가 조폭 같죠. 그래서 오히려 검사, 화이트칼라의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도 두일은 타이를 매고 흰 셔츠를 입고 가요. 조폭보다는 검사 같고, 셀러리맨 같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 같았죠. 전체적으로 점잖게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분들을 참고하려고 애썼어요.”
조폭이 아무리 검사처럼 그려져도 피할 수 없는 숙제는 있었다. 바로 끊임없이 등장하는 액션신. 이번 영화로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한 류준열은 무술팀과 호흡을 맞추면서 기본기부터 쌓아갔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대신 단순 합을 맞추는 느낌보다는 얼마나 두일스러운 액션을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죠. 액션팀에서도 시나리오를 읽고 두일을 분석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대화로 간극을 좁혀가면서 주먹 하나, 발차기 한 번까지 두일스럽게 만들어갔어요.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태수, 강식의 액션이 번잡스러운 막싸움이라면 두일은 깔끔한 액션이었죠.”
노력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류준열의 다크한 면모와 날렵한 액션에 여성 관객은 또 한 번 열광했다. 그렇게 류준열은 또 한 번 ‘여심 사냥’에 성공했다.
“근데 그게 사실 전 모르겠어요. ‘응팔’ 때도 말했는데 저는 ‘응팔’의 힘줄 장면이 여심을 자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단순히 지켜주는 거라 좋아할 수 있겠구나 정도였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여자들이 좋아할 장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오히려 제가 그간 누아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남자의 느낌, 그런 멋스러움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좋게 봐주시니 감사한 마음이죠(웃음).”
자의든 타의든, 그간 다양한 캐릭터와 역할로 여심 사냥에 성공한 류준열은 올해도 활발한 활동으로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지난해 영화 ‘택시 운전사’를 크랭크업한 류준열은 현재 ‘침묵’(가제)를 촬영 중이다. 이어 최근에는 ‘리틀 포레스트’ 촬영까지 들어갔다.
“본인이 쉬고 싶으면 쉬는 거고 달리고 싶으면 달리는 거로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재밌는 작품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재미없으면 안 할 텐데 감사하게도 재밌는 작품이 계속 들어왔어요. 행운인 거죠. 원하는 작품이 계속 있어서, 그게 연결돼서 쉬지 않는 거니까요. ‘리틀 포레스트’도 재밌는 작업이 될 듯해서 기대감이 커요. 올해는 자주자주 봬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