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48시간' 이미숙 포스터 <사진=tvN> |
[뉴스핌=황수정 기자] 예능이 죽음에 다가섰다. 선뜻 연결이 안되는 만남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던 소재가 등장했다. 웃음을 넘어 '힐링'을 주제로 사람들을 치유하다 '역사'를 다루며 깨우치게 하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죽음'을 소재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지난달 30일 첫 방송된 tvN '내게 남은 48시간'은 예능임에도 불구하고 '웰다잉'(Well-Dying)을 다루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앞서 지난 1일, 시즌2를 기약하며 종영한 MBC '미래일기'가 먼훗날의 나, 노년의 나를 가상으로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면, '내게 남은 48시간'은 바로 이틀 후 죽게 되는, 말 그대로 죽음을 체험하는 가상 프로그램이다.
연출을 맡은 전성호PD는 과거 MBC '우리 결혼했어요' 연출을 맡기도 했다. 결혼에서 죽음을 택한 그는 "예능에서 금지된 소재이긴 하지만 왜 죽음을 터부시 해야 하는가 생각했다"며 "죽음을 통해 현재의 이야기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미숙, 탁재훈, 박소담이 남은 48시간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보냈다. <사진=tvN '내게 남은 48시간' 캡처> |
사실 '내게 남은 48시간' 출연진들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는 지 눈에 띄게 차이를 보인다. 이미숙은 단지 48시간이 남았다는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펑펑 쏟는다. 이어 반려견을 챙기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소박하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탁재훈은 가장 먼저 아들을 떠올렸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노래를 녹음했다. 반면 20대의 어린 박소담은 친구와 소소한 추억을 남기거나 팬과의 시간을 택했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난 후, 이미숙은 절친 박지영, 최화정의 속마음 인터뷰를 보며 "나는 퉁명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고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탁재훈은 "(새로 녹음한)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고 싶다"고 가수로서 남은 아쉬움을 드러냈고, 박소담은 팬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서로 다른 현재이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달랐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며 아쉬움이 생기고 소중함과 감사함을 가지게 되는 결과는 비슷하다.
한때 '웰빙'(Well-being)이 트렌드였다. 그래서 잘 먹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현재를 중요시 하며 '힐링'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잘 사는 것을 떠나 잘 죽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자연스레 '죽음'에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654만 명이었지만 30년 뒤에는 1818만 명으로 늘어난다. 지금도 고령화 사회인 한국은 지난 1월 '웰다잉법'(존엄사법)이 국회에 통과됐으며, 오는 2018년 시행된다. 이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인지,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탁재훈, 이미숙, 성시경(왼쪽부터)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 호텔에서 열린 tvN '내게 남은 48시간'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그동안 스치듯 생각했던 '죽음'을, '내게 남은 48시간'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출연자들이 타이머 하나만으로도 몰입해 눈물을 흘리고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자연스레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웰다잉'에서 다시 '웰빙'으로 돌아오는, 절묘한 조합으로 '내게 남은 48시간'은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 시청자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죽음'이라는 소재 때문인지 시청률은 좋지 않다. 첫방송이 0.8%(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가구 기준, 이하 동일)였고, 2회에서는 약간 떨어진 0.6%였다. '죽음'이 주는 무게감과 그 숙연함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또 실제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의 가족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출연자들이 조금이라도 가벼운 태도나 진정성 없는 행동을 보인다면 논란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48시간'에 대해 전상호 PD는 "보너스와도 같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보너스 시간은 없다. 다만 이미숙이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됐다. 뭔가를 하려고 필요 이상의 짓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소신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한 것처럼, 시청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아직은 좀 더 지켜볼 만 하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