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 강화해야", "보험사는 약관 더욱 명확히 작성해야"
[뉴스핌=이지현 기자]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는 잘못된 약관을 확인하지 않고 승인한 것, 해당 약관의 수정을 꾸준히 건의했지만 10여년이 지난 후에야 이를 수정한 것에는 금융감독원의 책임도 있죠."
한 보험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처럼 자살보험금 문제를 둘러싼 보험사와 감독당국 간 책임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보험사의 자율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한화·교보생명은 이날까지였던 자살보험금 미지급 중징계에 대한 소명의견 제출을 오는 16일로 연기요청했다.
지난 1일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해서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살보험금 미지급 보험사에 임원징계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에 보험사들은 징계수준이 합당한지, 보험사 책임이 어느정도인지 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살보험금 문제는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동아생명(현 KDB생명)은 자살을 재해사망특약에서 보장하는 약관의 상품을 판매했다. 다른 보험사들도 이를 그대로 인용해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었다.
당시 금감원은 해당 상품의 표준약관을 검사한 뒤 그대로 승인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이후 자살을 재해로 보는 것은 맞지 않고, 약관에 해당 내용을 넣은 것은 실수였다며 2000년대 초반부터 금감원에 이를 수정할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2010년에서야 해당 약관을 수정했다.
그러는 동안 보험사들은 보험가입자가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 대신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했다. 이는 재해사망보험금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정도 규모다. 유족들이 이후 이에 반발하자 지난 2011년 금감원은 "법원 판례가 나오면 이에 따라 적용하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올해 5월 태도를 바꿔 자살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전액 지급할 것을 지시했다.
이때문에 업계에서는 잘못된 약관을 확인하지 않고 승인하고, 이를 늦게 수정한 것에는 감독당국의 책임도 있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 보험사 관계자는 "물론 보험사들도 약관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작성한 잘못이 있지만, 감독역할을 하는 금감원에서도 이를 모두 확인하지 않은 책임은 있다"며 "이를 수정하는 데도 당국 승인이 있어야 해 몇 차례 건의를 했지만 10년 만에 고쳐졌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그때 당시는 보험사의 자율성이 거의 없던 때라 상품 승인부터 수정 인가까지 모두 당국의 감독 권한 아래 있었다"며 "약관 개정도 일일이 감독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니 시간도 늦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같은 책임공방을 막으려면 보험사의 자율성 강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B보험사 관계자는 "물론 현재 보험상품 자율화로 상품 출시 전이나 표준약관에 대해 금감원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면서도 "다만 전에 없던 새로운 구조의 상품을 출시할때는 사전에 보고해야 하는 그림자규제가 남아있고, 얼마든지 구두개입의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보험사 자율성을 더 강화하게 되면 이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보험사와 당국간 책임공방이 이어지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미 보험상품 자율화 등 보험사의 자율성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서 보험사와 감독당국의 역할이 더욱 명확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예전과 비교하면 보험사들의 자율성은 많이 강화됐다"며 "자살보험금 이슈가 앞으로 발생하지 않으려면 보험사들은 약관을 더욱 명확히 작성해야 하고, 감독당국도 이를 사후에 더 꼼꼼히 감독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