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넝쿨 역시 태고적에 우연히 발견되어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끈의 형태로 서서히 발전해 사냥한 동물의 다리를 묶을 필요가 있을 때도 쓰였을 것이다. 채취한 식물들을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뜨거운 날에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귀찮게 하면 그것을 묶는 지혜도 생겼을 것이다. 지금 여자들이 특히 여름에 머리카락을 묶는 것도 그 기원이 사람들이 초기에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동물을 잡을 때에서 그리 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끈을 격자로 이어 짜면 그물이 된다. 그물 역시 손의 연장인 성격이면서도 훨씬 광대하다. 개울이나 바닷물 속에 펼쳐져 수많은 물고기들을 일시에 잡는다.
말을 타고서 휘두르는 채찍은 끈을 작대기에 연결한 것이다. 팽이를 칠 때의 팽이채도 구조가 같다. 올가미도 끈과 작대기의 혼성품이다. 소쿠리 안의 작은 작대기에 긴 끈이 매여 있다. 소쿠리 역시 그물과 같은 구조로 촘촘히 짠 것이다. 재료가 짚이면 가축화 이후의 말채찍이나 팽이채처럼 농경 시대의 작품일테지만 그 이전의 구석기 시대엔 소쿠리에 해당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물이나 올가미의 발명으로 인해 물 속의 고기나 하늘의 새마저 더 쉽게 잡을 방법이 터득된 것이다.
끈은 잇는 속성이 있다.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물건들을 서로 잇는다. 돌을 깨어 만든 돌도끼날을 언제부턴가 고대인은 나무 토막에 묶었다. 넝쿨이나 갈대나 골풀 등이 끈으로 사용되었음직하다. 묶여지자 편하기도 할뿐더러 일이 쉬워진다. 돌도끼의 자루를 손에 쥐고 짐승을 도살하거나 분해할 때 적은 힘으로도 큰 효과를 얻는다.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른바 원심력의 발견이다.
자루가 길수록 힘의 효과가 커지는 것을 느끼기에 돌도끼날에 묶는 자루를 길고 짧도록 이것저것 대보았을 것이다. 길수록 유리한데 너무 길면 신체의 한계로 인해 이용할 수 없으니 적당선에서 여러 자루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각각의 유용성이 체득되었을 것이다.
골프채는 클럽 페이스의 각도인 로스트와 함께 클럽의 길이에 따른 원심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채에 이용되는 원심력이나 고대인들이 돌도끼의 자루에 적용한 지혜가 원리적으로 똑같다. 골프채를 제작하는 데에도 고대에 체득된 원리가 배어 있는 것이다.
나뭇가지나 작대기를 통해서도 힘의 원리를 느꼈을텐데 끈과 그것이 조합되자 더 생생했을 것이다. 물론 그 원리를 도출해내어 이론적으로 밝히거나 공식으로 만드는 것은 그 후대에 일어나지만 몸과 삶 속에서 일어나기에 문화에 다채롭게 투영되어갔을 것이다. 끈의 끝에 돌멩이를 매달아 빙빙 돌려 내던지는 방식의 무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손과 발 위주로 사용하다가 작대기나 끈 같은 초보적 도구를 사용하다 보니 그로부터 얻는 지혜가 그 후의 무수한 효용성이나 원리들의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런데 끈은 나뭇가지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나뭇가지는 그저 외부에 있는데에 반해 끈은 다르다.
끈의 원형을 탯줄이라고 해도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고대인들도 탯줄의 존재를 안다. 출산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끊어냈을 것이다.
그처럼 끈이란 것은 원래 이어져 있는 성격이기도 하다. 탯줄이 끊겨야만 어미도 살고 자식도 살기에 끊어낸다. 그 행위를 문명적이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포유류의 동물들도 탯줄을 어떻게든 끊어낼 것이기에 자연에 가까운 일이다. 포유류적인 그 행위에서 인간은 의미를 감지하고 생성시킨다. 동물에게도 모종의 감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정도나 차원이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쓰면서 문화를 만들어가며 인지가 생겨난 인간은 그 순간 한층 강한 인지가 형성됨직 하다.
하나에서 떼어내 둘이 되어야 둘 다 산다. 그 둘은 하나였다. 하나가 둘이 되었다. 그 둘을 잇는 끈은 자연에서 나온 것인데 끊어내야만 생명의 흐름이 가능하니 탯줄을 죽여야만 한다. 그 죽임이 없다면 생도 불가능하다. 생을 위해서는 죽임이나 희생, 버려짐이 필수이다.
생명과 죽음. 하나와 둘. 그 관계. 연속과 단절. 기원..이런 등등의 관념이 원초적인 인지의 형태로 적어도 잠재력 속에 생성되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주 약한 상태일지는 몰라도 그런 느낌이 세대를 거듭해 쌓이는 동안 인류의 삶과 문화의 기본 정서가 되어갔을 것이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끈의 유용도가 한층 커졌다. 가축화한 동물들을 가두어 기를 우리를 지을 때도 나무 기둥을 박고 나무들을 얼기설기 엮어 끈으로 묶어야 했다. 수확한 농작물을 묶을 필요가 있었다. 움막을 지을 때도 지붕이나 문에 끈이 필요했을 것이다. 획기적인 변화는 무엇보다도 의복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삼베옷이나 무명옷, 명주옷 모두 정착 생활 이후의 작품들이다. 물레를 돌려 실을 잣는 풍경은 정착 생활의 어느 시점 이후로 일상 풍경이 되어 나갔다. 실의 탄생은 인류의 값진 업적 중의 하나이다.
실은 그 용도도 크지만 심리적으로나 미적으로 깊은 정서와 함께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실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인간의 정서는 지금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실은 베틀에 얹혀져 천이 되어간다. 뜨개질 바늘에 꿰여 한뜸 한뜸 맺어지며 옷으로 변모한다. 거기엔 어머니의 정성이 배여 있다. 비약도 없고 꾀도 없다. 논과 밭에서 씨를 뿌려 수확하는 일과 그 시작, 과정, 결실의 면에서 구조적으로 똑같다. 시간은 어느덧 계절에 따른 순환의 관념으로, 떠돌던 시절보다 훨씬 강하게 가슴에 들어와 있다. 그런 순환적이며 안정적인 방식이 농사일에나 밥을 짓는 일, 옷을 짓는 일에 똑같이 적용된다.
농사를 짓다.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서로 다른 이 행위들에 ‘짓다’라는 동일한 동사가 들어가는 현상이 재미있다. 잡다, 나꿔채다, 죽이다, 도망가다. 이런 동사들이 어울렸을 그 이전의 시대를 생각하면 더욱 분명할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느낌의 개념이 다양한 행위들을 관통하며 흐르는 것이다. 업을 짓다, 마무리를 짓다, 노래를 짓다, 시를 짓다 같은 정신적 차원에서도 ‘짓다’라는 동사가 들어간다.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업을 짓고 마무리를 짓고 노래를 짓고 시를 짓는다. ‘짓다’처럼 정착 생활을 꿰뚫는 말도 없을 것이다. ‘짓다’는 농경 생활의 핵심이다.
‘미소를 짓다’도 그럴 것이다. 인간 사회에 예의나 품성이 과거와는 변별되어 생성되어나갔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짓다’가 정착 생활 이후에 탄생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말들이 유목 생활과 정착 생활을 통털어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서적으로 그런 흡사한 유대감을 지닌다는 뜻이 더욱 나을 것같다.
과학은 과학 나름대로 발전하여 서양 과학의 물리학에서 초끈 이론으로 삼라만상의 기원과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이론도 끈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애초 불가능하기에 태고적의 끈 형태에 기원을 둔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지만 망언은 아니다. 초끈 이론 더 나아가 M이론이 우리 우주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임을 상기한다면 끈은 현대의 첨단 과학의 정점까지 아우르는 공헌이 있다. 태고적의 작대기 하나가 현대의 망 세계를 포함한 물질적 차원을 이룬 토대라고 한다면 태고적의 넝쿨 하나가 초끈 이론이나 M이론 같은 학문이나 정신적인 차원의 토대를 이루었다고 대충 퉁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작대기나 끈이나 모두 선이다. 그 단순함이 물질과 정신, 그 이상의 차원으로 분화, 생성, 진화되어 가는 문명의 시초를 이룸과 동시에 그 최초의 이미지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예쁜 실로 짜여진 남방을 입은 어느 과학자가 초끈 이론을 더욱 깊게 탐구해 나간다. 그 풍경 속에 나는 까마득한 시절에 고대인이 숲에서 넝쿨 한 줄기를 쥐어뜯는 모습을 얹어 본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