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지난 3개월간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질투의 화신’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진지한 건 도저히 못 참는 감독의 재치 넘치는 연출과 일명 ‘약 빤’ 필력을 보여준 작가, 그리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개성 넘치게 그려낸 배우들이 있었기에 ‘질투의 화신’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사실 로맨틱코미디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많다. 흔한 여주인공과 매력 넘치는 남자가 만나 서로 밀고 당기며 갈등을 빚다 자신의 온전한 사랑을 찾으며 해피엔딩을 맞는 줄거리가 꽤 상투적이다. 아주 망가지는 여주인공의 사랑스러운 매력이 여자 시청자를 포섭하며 인기를 끄는 것 역시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은’ 보란듯 이런 틀을 깼다. ‘질투의 화신’은 평범한 로코의 흥행 공식을 깼고, 이런 현상을 이끈 대표주자는 서지혜다. 공효진이 맡은 표나리와는 다른 매력적으로 화신(조정석)과 케미를 자랑한 서지혜를 두고 '재발견'이란 호평이 쏟아진다.
“대본을 4회까지 읽었을 때 홍혜원은 아나운서 느낌밖에 없었어요. 감독, 작가와 홍혜원 캐릭터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작가는 ‘빤한 두 번째 여주인공은 싫다’고 했고 저희는 보다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죠. 실제 제 성격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는데, 감독님은 이미 전작(그래 그런거야)의 스태프들을 통해 제 이야기를 들으셨더라고요. 제가 상남자 같다면서요(웃음). 그런 면이 혜원에게 입혀진 게 많죠.”
한 마디로 서지혜는 ‘질투의 화신’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한방에 뒤집었다. 매번 도회적이고 차가운, 혹은 여성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인물을 주로 연기한 서지혜는 ‘질투의 화신’ 속 홍혜원을 통해 걸크러쉬의 진수를 보여줬다. 실제로도 상남자다운 면이 많다는 그는 운전을 즐기는 레이서(?)다.
“제가 운전을 정말 잘해요. 예전에 3차선에서 2차선으로 바꾸려는데 갑자기 택시가 끼어드는 거예요. 무리해서 1차선으로 가려더라고요. 1차선은 좌회전 차선이었죠. 너무 놀라서 경적을 울렸더니 운전기사분이 버럭 화를 내시는 거예요. 저도 그래서 ‘왜 그러시냐’ 따졌죠. 가끔 친구들이 제가 운전하는 걸 보면 웬만한 남자들보다 잘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상남자 답지 않나 싶어요.”
홍혜원은 분명 그가 지금껏 입었던 옷과 정반대였다. 카리스마는 기본이고 예쁜 얼굴로 욕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연기생활 10년이 넘는 동안 서지혜도 카메라 앞에서 욕을 한 건 처음이었다. 어떡하면 이 장면을 잘 살릴까 고민하던 그는 감독과 상의 끝에 세 버전으로 나눠 촬영했다.
“감독님이 저한테 ‘욕도 할 줄 아냐’고 묻더라고요. 당연히 ‘욕 안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했죠. 그 이야기가 이렇게 홍혜원에게 영향을 줄 줄은 몰랐어요(웃음). 첫 욕신은 혜원이 화신에게 ‘지랄하네’라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차지게도 해보고 시크하게도 해봤어요. 그 전에 ‘써니’에서 욕쟁이 캐릭터였던 박진주 씨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했죠. 많은 도움이 됐답니다. 여기에 재미나게 들어간 ‘삐’ 처리 덕에 더 생동감이 느껴졌죠. 시청자의 반응도 상당히 좋더라고요. 시원한 욕이 사람들의 답답함을 한방에 날려줬구나 싶었어요.”
임팩트 있는 캐릭터였지만 서지혜의 분량을 아쉬워하는 팬도 많았다. ‘질투의 화신’으로 한번 자신을 내려놓은 서지혜는 기회가 있다면 더 밝고 시원시원한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다. 망가지는 건 언제든지, 얼마든지 준비돼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한 번 더 홍혜원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더 밝고 털털한 느낌의 캐릭터도 재밌을 것 같고요. 친구들은 제 성격을 아니까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면 괜히 ‘내숭 떤다’ ‘낯간지럽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모습과 비슷한 캐릭터를 해보라고 권해요. 그러면 저도 보다 보여줄 게 많은 캐릭터를 만들어서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그래도 서지혜 역시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 최근 생긴 취미가 캘리그래피다. 손편지를 좋아하는 그는 정성껏 자신의 캘리그래피를 써내려가며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특히 선물할 때 가장 좋다며 웃었다. 캘리그래피를 하다보면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른다며 적극 추천했다.
“올해 초부터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수강하는 곳도 많더라고요. 촬영이 없는 날에 혼자서 캘리그래피를 하다보면 머리 속 잡념도 사라지고 참 좋아요. 집중하는 느낌도 좋고요. 취미 덕에 생일 선물을 할 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들도 만족하더라고요. 예쁘게 꽂아놓기도 하고. 직접 캘리그래피를 할 때도, 완성본을 볼 때도 아주 흐뭇해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작품을 해온 서지혜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방황도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쉬지 않고 일을 했더니 너무나 지쳤다. 그래서 배우가 아닌 인간 서지혜의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고 배우의 길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수십번 물은 고민에 대한 답은 '그래도 배우'였다. 지금 30대가 돼 곰곰이 생각해보니 20대에는 ‘잘해야 한다’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를 내려놓고 보니 연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30대가 되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인기를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게 큰 힘이 됐어요. 마음을 다잡으니 연기하는 제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매년 계획을 세우는데 욕심 내지 않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수 있게 적어두고 있어요. 올해는 제게 90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할래요. 열심히 했으니까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