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 사랑을 받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을 막는 인물이 있다. 뒤늦게야 로미오와 줄리엣의 진심을 알고 그들의 사랑을 지지해주는 로렌스 신부와 유모다.
배우 손병호(54)와 배해선(42)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재탄생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렌스 신부와 유모를 연기한다. 두 사람은 극중에서 양 집안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악독하게 두 사람의 사랑을 막는 인물. 하지만 나중에야 순수한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다중적 캐릭터를 보여준다.
“제가 맡은 로렌스 신부는 정말 나쁜 인물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을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니까요. 하하. 저도 지금 연습하면서 계속해서 ‘이건 모두 하느님의 뜻일까’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즐겁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너무 무겁지 않게, 가볍게 잡고 가려해요.” (손병호)
“저희도 연습을 하면서 이 일의 원흉은 모두 로렌스 신부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웃음). 저는 지금 서이숙 선배와 유모 역을 같이 맡았는데, 선배가 하는 연기를 보고 따라하려고요. 하하. 이 작품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부모님이 따로 나오지 않아요. 결국 로렌스 신부와 유모가 두 사람의 부모가 되는 셈이죠. 저는 너무 귀하게 자란 아가씨(줄리엣)를 위해 사탕을 쥐어주기 보단, 채찍질을 많이 하는 인물을 만들어볼까 해요.” (배해선)
연극 개막이 약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그런데도 배우들은 아직도 대본 리딩 작업에 한창이다. 불필요한 대사는 빼고, 배우들과 합을 맞춰가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어찌 보면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넘치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다.
“작품이 빨리 무대에 오른다고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여러 가지를 많이 펼쳐놓고 있어요. 배우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있죠. 조급한 마음은 없어요. 오히려 여러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아요.” (손병호)
“그동안 공연됐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본과 책자를 모두 읽고 있어요. 방향성이 어느 정도 잡히면 배우들의 색깔과 개성이 작품에 자연스레 묻어날 것 같아요. 준비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지만 압박감으로 인해 무작정 달리긴 싫더라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죠.” (배해선)
‘로미오와 줄리엣’은 독백도, 배우끼리 받아치는 대사도 방대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 모든 것이 문어체로 표현됐다는 점이다. 손병호는 이게 다 셰익스피어의 ‘말 맛’이라고 표현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이 대사가 정말 많아요. 그 방대한 대사를 이 작품에서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이 크죠. 하지만 배우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셰익스피어의 ‘말 맛’이 대단하다고 느껴요. 감정을 표현하는 말, 그리고 사물을 묘사하는 모든 말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감탄이 터져 나오죠.” (손병호)
손병호, 배해선과 호흡을 가장 많이 맞추는 사람이 바로 작품의 타이틀롤 박정민과 문근영이다. 두 사람의 연기 경력에 비하면, 문근영과 박정민은 까마득한 후배지만 무대 위에선 결코 만만찮은 내공을 발휘한다.
“정말 열심히 하는 후배에요. 사실 작품에서 타이틀롤이 정말 힘들거든요. 두 사람이 몰입하는 모습을 봤을 때 ‘아, 배우는 배우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해요. 문근영과 박정민이 깊게 빠져드는 걸 볼 때는 새로운 뭔가가 나올 거라고 확신해요.” (손병호)
작품에 대해 얘기를 이어나가던 중, 문득 두 사람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인해 비극(?)을 맛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나이가 어린 관객보단, 제 또래에게 맞는 작품인 것 같아요. 젊은 관객이 봤을 땐, 단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치기 어린 사랑만 보일 거예요. 중년 관객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제가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생기더라고요. 눈물도 흘린 적이 있다니까요(웃음).” (손병호)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려서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 절대 그런 비극적인 선택을 할 수 없거든요. 하하. 그런데도 이 작품이 사랑을 받는 건 두 사람의 사랑이 이유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첫 만남에 이유도 없이 끌리고, 서로를 원하잖아요. 순간 마약에 취한 것처럼 말이죠. 그 진심이라는 것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은 해요. 이 작품을 통해 느낀 건, 사랑은 정말 미친 짓이라는 거죠.” (배해선)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리메이크 작품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 바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의 의미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배해선은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도 영광이다. 좋은 연말 선물이 될 수 있게 준비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서거 400주년을 맞이해 수많은 작품이 올라오고 있어요. 마지막인 12월에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좋죠. 적당한 때 만들어진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사랑이라는 것이 항상 설레고 흥분되는 감정이잖아요. 저희 작품을 통해 빤한 사랑을 되짚어 보고, 진짜 사랑을 확인하는 기쁨을 만끽하셨음 좋겠어요.” (손병호)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샘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