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극중 인물들의 사건을 상상하게 만든다. 대사도 적나라하고, 배우들의 감정은 계속해서 폭발한다. 조금 불편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모든 것을 무마시킨다.
1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DCF 대명문화공장 1관에서 연극 ‘블랙버드’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문삼화 연출가, 조재현, 옥자연, 채수빈이 참석했다.
연극 ‘블랙버드’는 15년 만에 만난 남녀가 지난 사건을 두고 엇갈린 기억을 쏟아내는 형식의 2인극이다. 미성년자 성적 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마친 후 이름을 바꿔 새 삶을 사는 50대 남자 레이(조재현)와 당시 미성년자였던 우나(옥자연·채수빈)가 성인이 돼 재회한 이야기를 그렸다.
이날 문삼화 연출가는 재연 작품인 ‘블랙버드’에서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많이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본을 번역하고 연출하면서 원본을 계속 읽었는데 대사가 굉장히 파편적으로 써있다. 단어의 무의미한 반복도 많다. 작가가 ‘왜 그렇게 썼을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고, 그 결과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가의 글 쓰기는 기존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없고 주어진 상황에서 인물들의 관계, 행동에 놓어져 있는 회색지대에 관심이 있다. ‘블랙버드’가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적인 작품이라 상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재현은 ‘블랙버드’를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 “8년 전에 연극열전에서 이 작품을 했을 때, 신선하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는 저 공연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8년 전부터 계속했다”고 말했다.
‘블랙버드’가 독특한 점은 앞서 밝혔듯 2인극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베테랑 배우와 신인배우가 함께 극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조재현은 “어려움은 없었다. 이 연극의 매력은 ‘날 것’ 자체다. 상대방이 신인이라는 점이 도움이 많이 됐다. 채수빈과 옥자연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방식들이 이따금 부끄러웠을 정도”라며 상대 배우를 치켜세웠다.
극중에서 우나는 15년이 지나서야 레이를 찾는다. 여기서 15년은 12세 어린 소녀였던 우나가 레이와 마지막으로 육체적 관계를 갖고, 사라져버린 레이로 인해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끼며 고통스럽게 지내온 세월이다. 옥자연은 그런 우나의 심리에 대해 “15년 만에 레이의 거취를 따라 그제야 찾아간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나가 15년 동안 레이만 생각하면서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옥과도 같이 그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계속 지냈기 때문에 정상적이진 못했을 것 같다. 우나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레이를 찾아간 것인지 공연 직전까지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를 용서하러 간 거라 본다. ‘미안하다’란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이는 우나와 대화하면서 진실과 거짓말을 반복한다. 혼돈된 말 속에서 과거 우나와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며 기억의 조각을 맞춘다. 조재현은 레이의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에 대해 “우나를 향한 레이의 진심은 거짓말은 없다. 사랑했던 마음도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이는 극중에서 계속 소아성애자로 비춰진다. 전반적인 극의 전개는 물론, 우나와 레이의 대화 사이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문삼화 연출가는 “기억은 반드시 왜곡된다. 그래서 레이는 정말 자신이 소아성애자가 아니라고 믿을 수 있다. 그게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 작가가 원하는 방향인 것 같다. 미스테리, 추측, 묘한 분위기를 계속 자아내면서 관객이 생각하게 만든다. 또 연출, 대사에서 이들의 심리나 상황에 대한 힌트가 많이 숨어있다”고 귀띔했다.
조재현은 “작가도, 저도 이 작품은 재밌고 흥미로운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기승전결이 없어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대중도 이런 점을 느낄 텐데, 고민을 재밌게 풀 수 있는 것이 바로 ‘블랙버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블랙버드’는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바크홀에서 오는 11월 20일까지 공연한다.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수현재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