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드라마 리메이크 열풍이 수 년째 이어지며, 이제 이를 정식 장르로 나눠도 될듯 싶다. 최근 케이블은 물론이고 지상파까지, 그리고 국내외 콘텐츠를 가리지 않고 드라마 리메이크 작업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과까지 좋아 방송계에서는 리메이크를 적극 환영하는 모양새다.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활발해진 배경은 다양하다. 아무래도 흥행작을 리메이크하다보니 이미 인증된 콘텐츠라는 점에서 쉽게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해외작품을 리메이크할 경우 장르의 다양화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레 스타 캐스팅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드라마의 리메이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미 원작이 있기 때문에 따라오는 부담감도 만만찮다. 기존 팬들의 기대치를 넘어서고 새로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는 스트레스가 제작진 입장에선 상당하다.
흥행 담보 콘텐츠…시청자 관심, 제작단계부터 확보 가능
잘되면 흥행작, 안되면 원작팬 분노 불 보듯…'양날의 검'
'굿 와이프' 포스터 <사진=tvN> |
일단 리메이크는 원작이 존재하는 콘텐츠이기에 아무래도 시청자의 관심을 모으기 쉽다. 2003년 MBC에서 방송된 ‘1%의 어떤 것’과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의 드라마 리메이크 소식은 단연 화제거리였다. 국내 콘텐츠뿐만 아니라 해외 콘텐츠를 리메이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tvN에서 방영중인 ‘굿와이프’와 미국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한 ‘안투라지’가 어느 작품보다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대개 리메이크는 작업은 원작이 흥행했을 경우 진행된다. 즉, 이미 검증을 마친 안전한 콘텐츠라는 의미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리메이크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 엽기 연애사-엽기적인 그녀’ 측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일본, 홍콩, 중국, 미국 등에서 리메이크됐다. 이미 할리우드의 ‘타이타닉’ 정도로 평가됐다”면서 콘텐츠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tvN 역시 ‘굿와이프’와 워작 ‘안투라지’를 리메이크한 이유에 대해 "큰 명성을 얻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기존 원작을 뛰어넘는다면 흥행작이 되지만 이만도 못하다면 혹독한 비난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는 사극판으로 각색됐다. 드라마 관계자는 “영화가 워낙 잘됐기 때문에 부담이 있다”면서 “대안으로 시청자에 신선함을 주기 위해 사극판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기존 원작의 유명한 장면들이 복합되면서 더 큰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안투라지’ 측 역시 “원작이 워낙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에 리메이크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내용이 연예계의 일상이기 때문에 좀 더 사실적인 이야기 구성을 위해 막강한 카메오 군단을 섭외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장르, 캐릭터 확보는 기본…외국 콘텐츠 리메이크, 한국적 정서 보완 각색도 필수
'크리미널 마인드' '굿와이프' 오리지널 포스터 <사진=CBS> |
해외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경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국내 드라마에서 취약한 법정물, 수사물을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장르 개척의 효과는 분명하다. 법정물의 성격을 일부 띄는 tvN ‘굿와이프’는 전도연의 최후의 변론, 김서형과 전도연의 의기 투합 변론신 등이 화제를 모으며 시청률 상승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드라마 ‘태양의 후예’ 제작사 NEW와 ‘아이리스’의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가 리메이크하는 미국 CBS ‘크리미널 마인드’는 수사물이기에 장르에서부터 확실히 차별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미널 마인드’를 제작하는 NEW는 “리메이크를 결정하게 된 건 원작의 탄탄한 캐릭터와 장르, 에피소드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나리오는 기본이고 입체적인 캐릭터 역시 리메이크 드라마가 웰메이드로 거듭나는 데 일조한다. 이는 ‘굿와이프’에서도 드러난다. 착한 아내에서 불륜까지 저지르는 김혜경(전도연)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과 악이 뚜렷한 캐릭터가 아닌 장단점, 비밀과 약점이 모두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이에 대해 ‘굿 와이프’ 제작진은 “모든 캐릭터를 바른 인물로 그리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길, 나쁜 길을 걸어가면서 깨닫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캐릭터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다. ‘굿와이프’는 그 해석에 대한 정답을 내리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색이 분명한 미국 원작 드라마 리메이크로 장르는 확보됐지만 각색하는 과정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야 하는 건 필수다. 문화적 배경이 시청자와 교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굿와이프’를 연출하는 이정효 감독은 드라마를 리메이크하게 된 이유가 한국적 정서가 깔려있다고 판단했지만 ‘굿와이프’ 제작진은 각색 작업에도 열을 올렸다. 1, 2회에서는 원작에 충실했고 한국에는 없는 배심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등도 한국식으로 바꿨다. 시청자와 거리를 조정하는 각색 작업이 신의 한 수로 통했다. ‘엽기적인 그녀’ 역시 드라마로 기획하고 각색, 편성하는데 5년이란 시간이 걸릴 만큼 국가에 맞는 각색이 드라마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복고, 젊은 층에는 신선함·기존 시청자에겐 향수
김정화·강동원이 열연한 '1%의 어떤것'(사진 위 왼쪽), '모래시계'에 출연한 고현정과 이정재(왼쪽 위, 아래), '1%의 어떤것' 리메이크작에 출연하는 전소민과 하석진 <사진=MBC, '1%의 어떤 것', SBS '모래시계' 캡처> |
국내 드라마가 재탄생되면서 기존 시청자들이 거는 기대를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모래시계’(1995)의 리메이크 제작설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고 있다.
‘모래시계’는 시청률 50% 이상을 찍는 대기록을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고현정, 최민수, 이정재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대작이다.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감독이 연출한 '모래시계'는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의 이야기를 그리며 깊은 울림과 감동을 안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송계에 따르면 ‘모래시계’ 리메이크 작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시즌2, 혹은 리메이크가 될 것으로 이야기가 되면서 ‘모래시계’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기대감도 안긴다.
‘1%의 어떤 것’ 역시 강동원과 김정화가 등장한 인기작이었기에 원작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1%의 어떤 것’ 측은 리메이크 배경에 대해 “무엇보다 2016년 버전 ‘1%의 어떤 것’의 의미가 큰 이유는 13년 전 기획자와 작가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라며 “2003년과 같은 기획자와 작가가 모였고, 지금도 ‘1%의 어떤 것’을 여전히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으므로 더욱 기대된다”고 밝혔다.
복고 드라마의 리메이크 열풍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간을 뛰어 넘어 옛 명성 그대로 시청자에 사랑받는 대작으로 남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