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황수정 기자·사진 이형석 사진기자] 웹툰작가인 김풍(38)을 만나기까지 참 오래 기다려야 했다. '찌질의 역사 시즌3'의 연재가 드디어 시작됐다. 기다린 만큼 그는 더 바빠보였고, 바쁜 만큼 그는 더 신나보였다.
김풍은 지난 5월 '찌질의 역사 시즌2'를 마무리 지을 당시 "쌀쌀한 바람이 불 때 돌아오겠습니다"라며 떠났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년을 훌쩍 넘어 뜨거운 폭염이 기승일 때 돌아왔다. 덕분에 시즌3 첫 화에는 그를 질타하는 댓글도 많았다.
"원래 바로 다음 시즌을 준비할 생각이었고, 시즌도 더 나누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니 동의 반복인 것 같았죠. 시즌3에서 아예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한 번 뒤엎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죠. 약속을 못 지킨 건 맞고,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었어요. 재밌는 작품으로 보답하는 수밖에 없어요. 악플이 많아도 좋아요. 그만큼 웹툰을 기다려왔다는 뜻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무플이죠.(웃음)"
웹툰 '찌질의 역사'는 한 남자의 찌질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즌1은 20살 초반의 풋풋한 대학생 신입생 시절을, 시즌2는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생 시절을 다뤘다. 그리고 시즌3에는 서른이 넘고 사회인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한다. 김풍은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찌질의 역사'를 구상하게 됐단다.
"사실은 어두운 내용의 웹툰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 마음이 정화가 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훈과 엄태웅 사이의 갭, 그 시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진 거죠. 영화 속 이제훈에게 찌질하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사실은 그게 나의 모습, 친구들의 모습이었어요. '옛날에는 나도 찌질하고 실수하고 불타는 사랑도 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차가워졌나' 싶었던 거죠. 또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남자 주인공 민기는 정말 말 그대로 '찌질'하다. 독자들은 '발암유발자'이자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이라고 분노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화가 난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김풍은 "찌질할 수록 반응이 좋고, 찌질할 수록 성장할 수 있게 된다"고 미소지었다.
"시즌 초반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찌질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빨리 꺼내면서 인기가 많아졌던 것 같아요. 무지에 의한 횡포죠. 민기는 사실 여자의 입장에서 그렸어요. 남자의 시점으로만 그리면 편향적이고 변명하는 것처럼 그려질 수밖에 없어요. 엄청나게 욕을 먹지만 사실 누구나 젊었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요. 이걸 부정하고 고귀한 척 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반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자존감이 생기고 사람은 성장하는 거죠."
연재를 시작한지 3년이 흘렀고, 작품 속 주인공은 물론 김풍 자신도 나이를 먹었다. 그동안 주인공을 찌질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사랑이었지만, 시즌3에서는 사랑과 함께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다양한 찌질함이 있긴 하지만 연애담이 제일 재밌는 건 사실이죠. 또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게 가장 힘든 일이니까요. 사랑 이야기가 청춘에서 가장 적나라하고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시즌3에서는 현실과 가까워지고 야망이 생기면서 달라진 주인공을 그립니다. 주인공 자신도 나이가 들면서 노련해졌고, 변화한 거죠. 저도 본게 많아지고 많아지고 연륜이 생기면서 처음보다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김풍의 웹툰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방송인, 혹은 요리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는 지난 2014년부터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비셰프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요리실력을 선보여 왔다. 이전에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한 바 있다. 당시에도 웹툰 연재와 함께 방송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럼에도 김풍은 "더 안정감 있다"고 말한다.
"웹툰과 방송을 같이 하면 힘든 것보다 오히려 더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웹툰을 쉬면서 방송을 할 때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을 하게 되요. 웹툰은 내 정체성이에요. 전문 방송인이 아니니까 방송에만 몰입하다보면 오히려 힘들어요. 웹툰을 그리며 방송을 하면 '안 되면 웹툰 그리지 뭐'란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방송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거죠. 또 방송을 하면 환기가 되기도 해요."
다양한 셰프들 중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 홍석천을 제외하곤 유일한 비셰프다. 평소에도 요리 프로그램을 자주 보고 관심이 많다는 김풍은 '냉장고를 부탁해'를 즐기고 있다. 애초부터 그에겐 '경쟁'보다 '재미'가 우선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풍은 샘킴의 천적이 됐고, 이연복의 제자가 됐으며, 최현석과 앙숙이 됐다. 동시에 요리 실력도 쑥쑥 자랐다.
"제가 유일하게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죠.(웃음) 하다보니가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어요. 다른 셰프들은 자신의 분야가 각각 있는데 저는 잡탕(?)이다 보니까 다양한 걸 얕고 넓게 아는 거에요. 샘킴 셰프는 순진하고 순수해서 옆에서 한 마디만 해도 당황해요. 반면 최현석 셰프는 누가 뭐라하든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죠. 이연복 셰프는 정말 넘사벽입니다. 셰프라기보다 장인인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상징적인 존재이자 대장님이죠.(웃음) 셰프님들 모두 자신의 요리를 사랑하고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에요. 친해지면서 치고 받고 하는 재미를 즐기는 분위기죠."
김풍이 방송에서 더욱 활약할 수록 자연스럽게 우려의 시선이 따라온다. 그러나 김풍은 방송과 웹툰을 일종의 '소통' 창구 중 하나로 생각한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맡은 바 역할은 최선을 다하고 싶단다. 또 방송일이 재밌고 흥미도 생겼기에 본업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좋은 기회가 생기면 거절하지 않으려 한다.
"웹툰은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내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소통의 장구에요. 방송도 마찬가지죠. 내가 하는 행동과 말, 비쳐지는 모습을 시청자들일 보고 웃고 공감하는 쾌감의 주파수가 같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렇게까지 유명세가 생기는 건 의도하지 않았기에 내가 얼만큼 잘 소화할 수 있는지 역량을 잘 가늠하고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주어지고, 또 재밌고 저와 잘 맞는 좋은 작품이라면 거절하지 않으려고 해요. 다만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낯가림이 좀 있거든요.(웃음)"
좋은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김풍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가장 큰 목표는 '찌질의 역사 시즌3'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김풍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쏟아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채로운 모습의 기품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또 우리는 얼만큼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지금은 '찌질의 역사3'를 잘 마무리 짓는게 가장 중요하죠. 그동안 웹툰을 제대로 마무리 지은 적이 없어요. '찌질의 역사' 같은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힘들 것 같아요. 사실 웹툰은 연령대가 약간 낮아야 인기가 있는데 30대를 타깃으로 했는데도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니까요. 처음부터 인기에 상관없이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고, 시즌3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제대로 쏟아내는게 가장 큰 목표에요"
김풍이 말하는 #웹툰 #대중 #서브컬처 최근 웹툰은 시장의 확장은 물론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되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가 쏟아지고, MBC '무한도전'은 릴레이툰 특집으로 아예 자체 웹툰을 제작했다. 때문에 웹툰과 웹툰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상태. 김풍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웹툰에 도전하는 건 좋은 현상이에요. 재미로 시작해서 본인에게 맞으면 진지하게 시작해야죠.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재미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재미삼아 시작했으니까요.(웃음) 웹툰은 자신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장르에요. 포털사이트든, 커뮤니티든 웹툰을 게재하며 바로 댓글이 달리죠.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에요. 한 달에 한 편을 만드는 건 누구나 하지만 일주일에 한 편씩,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건 어려운 일이에요. 사실 웹툰은 메인이 아니라 서브컬처(Subculture)죠. 그래도 웹툰 기반 콘텐츠가 많아지고 산업규모가 커져서 무시할 수 없게 됐어요. 다만 아직까지 인기가 높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콘텐츠에만 인프라가 몰리는데, 좀더 다양하고 많은 인프라가 생겨야 하는게 숙제죠." |
[뉴스핌 Newspim] 글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이형석 사진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