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영업 영향 분석 특별팀·법률 자문 등 분주
[뉴스핌=한기진 기자] “은행 최고의 고객은 교사와 공무원이에요. 신용도는 가장 높고 연체율은 가장 낮은 직업이어서 카드, 보험, 대출 등 VIP고객으로 모셔야 하는데, 앞으로 직접 만나는 것은 물론 투자 세미나에도 초청할 수 없겠어요. 김영란법이 쌍벌제여서 고객도 처벌받게 되면 큰 일 아닙니까.”
부정청탁이나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로 오는 9월28일 시행될 예정이자, NH농협은행 서울 모 지점장은 주요 고객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김영란법은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건데, 영업하는 은행원 입장에서 교사나 공무원은 청탁 대상이 아니라 예적금 가입하고 은행의 대출을 써달라고 모셔야 하는, 청탁과 관련이 없는데도 대면영업이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금융권이 고심에 빠졌다.
마케팅용 농축산품 선물세트 수요가 많은 금융권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구매를 크게 줄일 전망이다. <사진=현대백화점> |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들은 김영란법 특별팀(TF)을 가동하고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등 대응에 들어갔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김영란법의 직접 규제 대상에 들어가 면밀한 대응 기준을 만들고 있다. 국책은행 모 인사는 “국책은행은 SOC, PF, 창업 등 다양한 정책금융을 집행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청탁 등을 막는 내부규정이 엄격해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시중은행들은 비상이 더 걸렸다.
자산가나 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 행사가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자는 “중요 고객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은 자산가로 골프나 문화행사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 은행들도 이런 점에 맞춰 마케팅을 하는데, 배우자가 공무원인지 교직원인지 매번 물어봐야 한다면 고객들이 매우 싫어할 것”이라며 “고객에게 개인정보를 내놓으라는 셈”이라고 했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프로골프단을 운영하거나 후원하는 일이 많은 것도 VIP고객들과의 골프 행사를 개최하기 위한 측면이 많다. 시중은행 모 골프단장은 "선수들과 계약에 한해 몇차례 PB(프라이빗뱅킹)나 VIP고객과의 라운딩이 포함돼 있고 고객들도 좋아하는데 VIP고객의 배우자가 공무원이나 교원이라 제외한다면, 골프단의 규모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히 교직원 대상 마케팅으로 인해 이중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이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10만원 이상 받은 교원에게 해임, 파면의 중징계를 내리는 등 이미 관련 법령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있다. 김영란법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돼, 이를 구실로 교원 징계 법령의 규제를 받게 될 것이란 우려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금융당국 주변에서는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은 금융당국 관계자들과 접촉이 많은 편으로, 가령 금융규제 완화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업계의 의견을 직접 만나 청취하는 일이 필수다.
금융위 모 과장은 “금융종사자들과 잘못된 만남은 나쁘지만, 시장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게 금융시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 과거보다 찾아오는 일이 매우 줄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