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지난봄 척사광(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던 배우 한예리(32)가 신작 ‘사냥’을 들고 극장가로 돌아왔다. 29일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사냥꾼의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린 작품이다.
극중 한예리는 열연한 인물은 사건의 목격자 양순. 또래보다 지능 발달 속도는 느려 동네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지만, 운동신경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다. ‘사냥’에서 유일무이(?)하게 순수한 존재이자 유일한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전 그냥 현장에 가면 양순이었어요. 저를 한예리라고 부르지도 않고 다들 ‘양순아’라고 불러주셨죠. 근데 워낙 양순이 자체가 맑고 밝은 캐릭터라 양순이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가면 마냥 좋아해 주셨어요. 양순이를 보면 좋아지는 기분이 있는데 그게 양순이의 힘인 거죠. 다들 그렇게 양순이를 좋아해 주시고 절 양순이로 대해주시니까 굉장히 즐겁게 촬영했어요. 연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요.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죠. ‘내가 저걸 무슨 생각으로 했지’라고요(웃음).”
촬영이 끝난 지금 한예리는 양순으로 살았던 시간을 즐거운 기억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가 믿을만한(?) 말은 아니다. 한예리는 지난 9월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가을과 겨울에 걸쳐 산속에서 추위와 싸우며 촬영을 이어갔다. 제아무리 액션에 능한 여배우일지라도 체력적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렇게 야외신이 많을지 몰랐어요. 엔딩 한 컷 빼고는 다 야외죠. 저도 찍다가 나중에 ‘뭐야? 다 야외야?’하고 다시 시나리오를 확인했다니까요(웃음). 아무튼 그래서 몸 관리가 중요했어요.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사이사이 간식도 먹고 했죠. 먹는 거로 받는 에너지가 크니까요. 다행히 평소에 했던 운동이 많이 도움 됐어요. 무용을 해서 기초체력이 있는 편이죠. 그게 계속하면 자연스럽게 힘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40분짜리 공연을 하려면 적어도 배 이상 풀로 연습할 체력이 돼야 하죠. 그걸 계속했더니 체력이 쌓였더라고요.”
오랜 시간 배웠던 한국 무용(생후 28개월부터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한예리는 초등학교 졸업 후 국립 국악중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한국무용을 전공했다)이 뜻밖의 도움을 준 건 체력뿐만이 아니었다. 타인의 행동을 빨리 캐치하고 습득하는 것, 무용으로 생긴 또 이 습관 역시 그의 연기에 큰 도움을 줬다. 정신연령이 멈춰버린 10대 소녀의 모습을 이질감 없이 소화한 노하우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게 눈에 잘 들어와요. 춤은 보고 따라 하는 방법으로 외우니까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의 자세, 표정, 행동을 잘 기억해내는 편이죠. 무용은 선생님의 버릇, 습관까지 따라 하게 되는데 그걸 오래 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캐치되는 거죠. 평소 다른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가까이에 있는 비슷한 캐릭터를 찾아서 나와 그의 행동을 잘 섞어보는데 이번엔 아이들을 유심히 봤어요. 양순이가 사이사이 할 행동들을 관찰했죠. 예를 들면 아이들이 불안할 때 하는 행동들 같은 거요. 그런 다음 연기할 때는 날 많이 내려놨죠. ‘나는 10살이다, 10살이다’라면서(웃음).”
한예리는 그렇게 양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하드코어 작품 또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번에도 쉽지 않은 선택, 쉽지 않은 결정. 하지만 한예리는 되레 자신을 믿고 그런 역할을 맡겨주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언젠가 그 역할이 쉽지 않아서 제게 줬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까 감사하더라고요. 그건 제가 그 역할을 맡았을 때 떠 있지 않고 캐릭터가 발을 붙이게 됐다는 의미잖아요. 너무 감사했죠. 물론 그러다 보니 대중은 평범한 제 모습이 특이하다고 느끼시겠지만요(웃음).”
다행히(?) 그의 차기작 캐릭터는 특별함 속에 평범함이 묻어있다. 먼저 대중과 만날 작품은 오는 7월 방송하는 JTBC 드라마 ‘청춘시대’다. 극중 한예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생계형 철의 여인 윤진명을 연기한다. 이어 권율과 함께한 영화 ‘최악의 하루’로 또 한 번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청춘시대’ 같은 경우에는 다섯 명의 주인공 중에 청춘의 어두운 부분이나 생활적인 측면을 좀 더 많이 보여주는 캐릭터예요. 반면 ‘최악의 하루’에서는 예쁜 서울 여자로 나와요(웃음). 이번엔 사투리도 안쓰죠. 남자 셋한테 거짓말하면서 만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긴데 여전히 옷은 단벌이지만, 매력적인 여성성을 가지고 있죠. 감독님이 제가 거짓말하면 재밌을 거라고 했는데 거짓말을 하면서 다채롭게 조금 틀어주는 모습을 보면 재밌겠다 싶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