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종달 골프전문기자]박재경(32)이 ‘골프 명가(名家)’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선다.
투어 13년차인 그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대표 골프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 박연태(62) 프로도 KPGA 투어 정회원이다. 그의 형 박준성(34)도 KPGA 프로다. 또한 큰아버지인 故 박윤태도 KPGA 프로였다.
박재경 <사진=KPGA> |
KPGA 창립회원이자 3, 4대 회장을 역임한 故 박명출 고문이 그의 당숙(할아버지와 사촌지간)이다. 박명출 고문은 KPGA 2대 회장을 역임한 故 연덕춘 고문과 함께 1956년 국내 최초로 골프 월드컵에 참가한 것을 비롯해 1959년까지 4년 연속 월드컵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KPGA에서는 1993년부터 박명출 고문의 이름을 딴 ‘명출상’을 신인상의 또 다른 이름으로 명명해 박명출 고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1981년 ‘제28회 KPGA 선수권대회’와 ‘쾌남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1970년대와 80년대 초 강자로 군림한 뒤 은퇴 후 KPGA 부회장을 역임한 박정웅(74)프로와 KPGA 경기위원으로 활동한 박정식(70)프로도 그의 당숙으로 5촌 지간이다.
이런 골프집안의 영향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했다. 그는 어렸을 때 골프채 말고는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논 기억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쓰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때는 항상 골프 선수였어요. 그냥 당연히 해야만 하는 그런 기분에 썼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골프는 그에게 놀이였지 목표는 아니었다. 골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그는 2002년 국가대표상비군을 거쳐 2003년 KPGA 프로(준회원)와 투어프로(정회원) 자격을 잇달아 땄다. 2004년 KPGA 코리안투어에 데뷔할 당시 그는 촉망 받는 기대주였다. 데뷔 첫 해 ‘스포츠토토 오픈’ 에서 5위에 오르는 등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후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는 2006년 군입대를 결정했다. 2008년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투어에 뛰어든 그는 2010년 2부 투어 격인 KPGA 아카데미투어 8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과 2013년 KPGA 코리안투어에서 상금랭킹 30위권을 유지하며 도약을 꿈꿨지만 2014년부터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yips:샷에 대한 불안감)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멘탈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저를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고…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를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옥죄었다”고 했다.
2014년 그의 페어웨이 안착률은 69.5%로 전체 선수 중 82위권을 맴돌다 지난 해에는 66.7%로 떨어지며 드라이브 샷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급기야는 올 시즌 KPGA 코리안투어 출전권까지 잃어버렸다.
그는 올 시즌 2부 투어인 KPGA 챌린지투어에서 뛰면서 재기를 노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1월 말경 태국으로 날아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드라이버 입스를 해결할 계획이다.
그는 “저의 골프 스승이신 아버지가 지병인 당뇨로 고생하시면서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 형도 군대를 다녀온 뒤 골프선수의 길이 아닌 운동역학을 공부하는 학자의 길로 진로를 바꿨다. 아버지와 형이 이루지 못한 KPGA 코리안투어 우승을 위해 계속 도전하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뉴스핌 Newspim] 이종달 골프전문기자 (jdgolf@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