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민선 기자] "날데리러 오거든 ○○한다고 전해라~"
최근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뜨겁다. 단순하고 재미있는 가사, 그리고 그 안에 '장수'라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맛깔나게 표현한 것이 인기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지금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을 더 오랫동안 지키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들 역시 '장수'에 대한 욕구는 다르지 않다. 각자 남아야 하는 이유는 다르더라도 목적은 오직 하나, 살아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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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의 인사 시즌이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 이미 한차례 칼바람이 휩쓸고 간 곳도 있지만 대우증권 인수전에 뛰어든 한국투자증권과 올해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는 메리츠종금증권, 하나금융투자를 포함해 상당수 증권사들은 여전히 긴장감 속에 인사 발표를 앞두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각 증권사의 경영이사, 사외이사, 비등기임원을 포함한 임원은 약 860여명에 달한다. 불과 3년전만해도 1000명이 넘었지만 시장 부침에 휩쓸리며 하나둘씩 자리를 내주고 떠났다.
대부분 증권사 임원들은 대부분 승진 혹은 이직 이후 첫 2년을 빼고는 1년 단위로 계약서를 다시 쓴다. 최상위에 있을 뿐 '고급진' 계약직이 이들의 현실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증권가의 평균 연령이 더욱 낮아지면서 인사한파에 대한 공포는 한층 커졌다. 일례로 상무급에 해당하는 리서치센터장들 중에서 70년대생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이는 상대적으로 고령층의 임원들에게 더 빨리 밀려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이른 나이에 임원이 되는 이들 역시 그 부담과 불안감은 커진다.
실제 불과 몇년전만해도 젊은 나이에 임원 승진이라는 이유로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기자가 아는 A임원은 이번 인사에서 밀려났다. 5년간 자리를 유지했지만 아직 50세도 채 되지 않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에 대해 "젊고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인사라는 것이 늘 그렇듯 회사 내부 경영 방침이나 컨셉 변화 등에 따른 결과였던 것 같다. 다만 그도 젊은 나이니 다른 곳을 찾지 않겠느냐"면서도 "여의도 임원들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니 (나도 그렇고) 해봐야 몇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항상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중학생 딸을 둔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내년에도 시장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연말 인사를 앞두고 불안감이 더 크다"며 "은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고객들에게 늘 말씀드렸지만 여의도의 은퇴는 유난히 더 빠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임원 승진하던 날부터 (은퇴 후에 대한) 고민은 늘 있었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연말이 오더라"면서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당연히'가 없는 게 인사 아니냐"고 표현했다.
일각에선 요즘같은 증권업계의 칼바람이 지속된다면 인재 이탈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시가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면서 각 증권사들은 수익구조 다각화를 꾀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생존비결을 터득한 증권사는 그리 많지 않다.
한 증권사 임원은 "수십년간 여기서 일해온 이들조차 하루 아침에 잘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젊은 친구들이 이 업계에 메리트를 느낄 수 있겠냐"며 "우리나라 증권산업이 좀 더 발전하고 탄탄해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전해왔다.
며칠전, 1월에 점심 한끼 하자는 기자의 말에 "1월까지 내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하며 웃던 한 증권사 전무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여의도의 매서운 칼바람이 부디 그를 피해가길 바랄 뿐이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