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지난여름 1700만 국민을 울린 배우 최민식(53)이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바다 대신 산에 올라, 칼 대신 총을 들었다. 이순신에 이어 이번엔 명포수다.
최민식의 신작 ‘대호’가 16일 관객과 만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았다. ‘신세계’ 박훈정 감독과 최민식, 그리고 제작사 사나이픽처스가 다시 뭉친 작품이다.
“시나리오는 좋았어요. 501% 동의했죠. 저는 운명론과 사필귀정을 믿거든요. 게다가 박 감독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잖아요. 다만 문제는 CG였죠. 메시지가 훌륭해도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나오면 말짱 꽝이니까. 정말 미안한 이야긴데 확신도 없었어요. 리스크가 큰데 뭘 믿고 해야 할지 몰랐죠. 근데 그렇다고 이렇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포기하자니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해보자 싶었죠. 또 누군가 시도해야지, 다 겁먹어서 못하면 되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주류라고 평가받는다면 한 번 시도해보자 한 거죠.”
사실 최민식만 CG를 걱정한 건 아니다. 제작자부터 업계 관계자들까지 100% CG로 탄생할 대호를 우려했다. 그런데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객석 곳곳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스크린 속 대호의 모양새와 움직임 모두 그럴듯했던 것. 완벽하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국 영화의 레퍼런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최민식 역시 만족스러웠다.
“중간에 확인하진 않았어요. 미완성된 걸 보면 저도 사람인지라 말실수를 하게 될 테고 그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가만히 기다려 줘야죠. 그래서 저도 언론 시사 때 처음 우리의 김대호 씨를 만났어요. 건방지게 공식 석상에도 안 나오고 갔더라고요(웃음). 아무튼 너무 흡족했어요. 김대호 씨한테 배우들이 다 발렸죠. 김대호 씨 나오고 꼬랑지 바로 내렸어요. 감동이었죠. 그동안 의심하고 불안해했던 게 미안할 정도였어요. 누차 말하는데 만일 ‘대호’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이건 100% 김대호 씨와 CG팀 덕입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까지 촬영 과정은 험난했다. 당연했다. 스크린을 휘젓던 호랑이는 촬영장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카메라 앵글을 잡고 동선을 알려주는 모션 액터 곽진석이 있었지만, 그가 대호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민식은 보이지 않는 대호와 무려 감정을 교류해야 했다.
“중요한 감정신은 박 감독의 배려로 후반에 찍었어요. 초반에 찍었으면 애로사항이 많았을 텐데 그런 점을 덜었죠. 주로 상상하면서 촬영했는데 모션 액터로 활약해 준 친구 덕에 굉장히 수월하게 했고요. 호랑이에 대한 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찰했어요. 사격이라도 익숙해 다행이었죠. 자랑 같지만(웃음) 제가 클레이 사격도 잘해요. 국제 심판 자격이 있는 송재효 선생님이 태릉선수촌에 와서 사격을 취미로 하라고 할 정도죠.”
호랑이 CG, 명포수 외에도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항일 영화와 관련된 것.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 만큼 일각에서는 ‘대호’를 항일 영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스포일러상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최민식과 대호가 장식하는 엔딩신이 특히 그렇다.
“그렇게 해석도 가능하겠죠. 저도 예상했고요. 하지만 저는 그게 주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천만덕이 총을 드는 이유는 일본군과 관련이 없거든요.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 동기에 의해 총을 잡죠. 그래서 항일 메시지보다는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한 인간의 삶의 태도와 그것이 그릇된 욕망을 차단할 수 있는 결과를 봤으면 해요. 항일의 관점도 좋지만 어떤 인간 생명 존중 도리와 예의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숭고한 모습과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탐욕이 대비를 볼 수 있길 바라죠.”
‘대호’를 항일 영화로 본 관객이 있다면, 반대로 부성애 코드에 흠뻑 빠져 본 이들도 있다. 실제 최민식의 부성애 연기는 이번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최민식은 이번 영화에서 아들 석(성유빈)을 향한 가슴 절절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간 스크린에서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만날 때려죽이고 찢어 죽이기만 했네요(웃음). 아버지 역할도 ‘대호’ 전에 ‘주먹이 운다’ 정도밖에 없고요. 이제는 상투도 좀 그만 틀고 좀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와야죠.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많은데요. 더 영화 같은 세상이 진짜 펼쳐지고 있으니까 현실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뭔가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멜로도 좋고요. ‘파이란’은 얼굴도 못 봤잖아요. 근데 사실 시나리오가 입에 맞는 것이 많지 않아요.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제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게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네요.”
이처럼 그가 작품 선택에 신중한 데는 그가 말한 취향도 있지만, 흥행 부담도 작용할 거라고 여겼다. 물론 최민식은 그간 공식 석상에서 흥행 관련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개의치 않는다”고 답해왔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가. 최민식은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운 ‘명량’의 일등공신.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도, 그만큼 부담감도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죠. 근데 흥행만 신경 썼다면 ‘대호’도 안했을 겁니다. 1700만 관객이 넘어야 면이 서는데(웃음). 전 배우라도 세간의 평가에 자유로워야 한다고 봐요. 물론 대중의 시선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거기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되죠. 이 일로 먹고산다고 해서 연기가 호구지책은 아닙니다. 먹고 살려고 억지로 하는 때가 오면 그만둬야 해요. 이건 제 소신이기도 하죠. 하기 싫은데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좋은 연기를 하겠습니까. 대중 앞에 서 있지만,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는 내 만족이 중요해요. 적어도 제가 이 일을 생각하는 건 천만덕이 산군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