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한국기업 공격 사례
[뉴스핌=민예원 기자] # 지난 2003년 챈들러 형제가 운영하는 소버린 자산운용은 한국 자본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소버린은 SK(주) 주식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에 오른 뒤 본격적인 경영 개입을 시도했다.
소버린은 국내 굴지의 재벌 SK그룹의 오너가 적은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계열사 청산, 경영진 교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SK는 적극적인 백기사 모집에 나서는 등 1조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한 뒤 어렵사리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다.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 일명 '소버린 사태'를 겪은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2004년 이번엔 삼성물산이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주식 5%를 매집하고, 인수 합병하겠다는 간접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헤르메스는 공언한 것과 달리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팔아 300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떠나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공격으로 끝났지만 역시 증시와 재계에 기업지배구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 사건으로 기록됐다.
# 2006년 칼 아이칸의 KT&G 공격도 마찬가지다. 칼 아이칸은 스틸파트너스와 손 잡고 KT&G 주식 6.59%를 매입했다. 그 후 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 1명을 확보하는데 성공했고, 자회사 매각 요구 등을 주장했다.
KT&G는 국민연금의 도움으로 경영권을 지켰지만 칼 아이칸은 주식을 매각해 1500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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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싱어 엘리엇 어소시에이츠 창업자 <출처=블룸버그통신> |
국내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은 이처럼 1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를 비롯한 허점이 나타나면 이들은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반대를 내걸고 공격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4일 삼성물산의 지분 7.12%(1112만5927주)를 갖고 있다고 공시했다.
엘리엇측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5%룰에 따라 지분보유 사실을 공시하면서 공개적으로 '합병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제일모직이 기준 주가에 따라 1대 0.35로 삼성물산을 흡수하기 때문에 합병 시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제일모직 주주만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과거 소버린과 아이칸, 헤르메스 사례를 떠올리며 엘리엇측이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 떠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들의 이익은 결국 우리 기업들의 취약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민예원 기자 (wise2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