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상반되는 성향의 캐릭터를 도전하는 연기자들은 많다. 한 얼굴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배우 역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경우는 없었다. 살인하던 사람이 살인을 당하다니, 좀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장면이다. 설령 그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국민 귀요미 ‘포블리’가 됐다 한들, 범죄 스릴러에서 그의 역할이 피해자라는 건 어쩐지 좀 어색하지 않은가.
약 5개월 전 영화 ‘살인의뢰’(제작 ㈜미인픽쳐스, 제공·배급 씨네그루㈜다우기술) 합류 소식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의 역할을 ‘살인마’로 단정 지은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당시 “내가 왜 또 살인자일 거로 생각하느냐”며 장난스럽게 웃던 배우 김성균(35)은 그렇게 보란 듯이 대중의 편견을 깨부수고 피해자가 돼 스크린에 돌아왔다.
오는 12일 개봉을 앞둔 영화는 살인마에게 동생을 잃고 피해자가 된 강력계 형사 태수와 아내를 잃고 사라진 평범한 한 남자 승현이 3년 후 쫓고 쫓기는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복수를 그린 범죄 액션 스릴러다. 극중 김성균은 승현을 통해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쳤다.
“이게 단순 상업영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각할 부분을 많이 줘서 좋았어요. 사형제도부터 공권력이 보호하고자 하는 게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어떤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는 거죠. 개인적으로 승현의 입장에서는 관객들이 그 아픔과 공감을 함께 공감할 수 있으면 했고요. 동시에 희생자의 아픔을 다시 생각해 줬으면 싶었던 거죠.”
김성균이 극중 연기한 승현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연쇄 살인마에게 아내를 잃고 그 충격에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 가족이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 그간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웃사람’,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등을 통해 섬뜩할 정도로 악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난생처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연기에 도전했다. 공식 석상에서 “뽀로로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며 고충을 토로했던 김성균은 심적으로 꽤 힘든 시간을 보낸듯했다.
“감정적으로 많이 다가가는 역할이라 앞으로 연기를 해나가는 데 있어 많은 공부와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확실히 힘들긴 하더라고요. 사실 살인범 연기는 그 심리를 정확히 알 수 없잖아요. 물론 기분이 더럽긴 하지만요(웃음). 반면 승현의 경우엔 그 극한의 경험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한 상황을 극대화하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감정이죠. 그런 부분이 힘들었던 거예요. 피해자들의 아픔을 찾아보고 상상하다 보니 가슴이 치밀어 오르고 눈물도 났죠.”
김성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배우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인 만큼 촬영장 분위기도 어두웠을 거라 예상했다. 스크린 속 김성균, 김상경, 박성웅 세 남자는 쉴 새 없이 쫓고 쫓기고 찌르고 찔린다. 하지만 촬영장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되레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퍼졌다. 험악한 분위기는커녕 연기파 배우들답게 누가 더 고생하나 경쟁하듯 작품에 임했단다.
“정말 누가 누가 더 고생하나 대결하는 분위기였어요(웃음). 현장 가면 스태프들이 와서 ‘어제 누가 엄청 고생했다더라, 엄청나게 열심히 찍었다더라’는 등의 말을 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래? 질 수 없지’라면서 경쟁하듯이 더 열심히 찍는 거예요. 마지막 엔딩신도 제 나름대로는 ‘이 정도면 됐어’라고 할 만큼 찍었는데 나중에 또 그러더라고요. 마지막 성웅이 형님과 상경이 형님 갈대 신에 비하면 어제 고생은 고생도 아니라고요. 영화로 보니까 정말 장난 아니더라고요(웃음).”
스포일러 관계상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이끌어 가는 피해자 태수와 승현은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이 상반된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3년 후 모습을 놓고 봤을 때 태수는 이성적인 편이고 승현은 감성적인 편이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실제 승현을 연기한 김성균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 궁금했다.
“전 감성이 좀 앞서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감성이 없어지거니와 스스로 이성적이려고 노력하죠. 감성적인 행동이 후폭풍이 엄청나기도 하고요. 예전에 큰아들 태어나고 반지하 살았을 때도 누가 창문에 침 뱉고 이러면 가서 나가서 한바탕 하고 싶더라고요. 근데 또 제가 없을 때 와서 가족들이 다칠까 봐 참게 되는 거죠. 당연히 아직도 감성이 앞설 때는 있어요. 대신 좋은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낚시도 하면서 평정심을 찾으려고 하죠.”
혹, 평정심을 찾는 것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가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아내의 뱃속에는 사랑스러울 셋째 아이가 숨 쉬고 있으니 책임감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일도 더 많이 생기는 듯하다”는 김성균은 현재 이제훈, 고아라와 ‘명탐정 홍길동’ 촬영에 한창이다. 또 촬영을 마친 옴니버스 영화 ‘여름에 내리는 눈’은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3월 중순 ‘무녀굴’ 크랭크인도 앞두고 있다.
“정말 아이가 생기니까 좋은 일이 자꾸 생겨요. 매번 아빠를 아주 바쁘게 해주더라고요(웃음). 얼마 전에도 ‘살인의뢰’ 포스터를 보다가 문득 꿈꾸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내 얼굴이 김상경, 박성웅 선배 옆에 있다니’ 싶으면서 뭔가 뿌듯했죠.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훌륭한 배우들과 새로운 작업을 함께할 수 있는 지금이 제일 큰 기쁨인 듯해요. 물론 앞으로도 이런 기쁨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