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나는 외모도 예쁘고 재주도 많으니 당신은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
지난 14일 베일을 벗은 영화 ‘허삼관’(제공·배급 NEW, 제작 ㈜두타연·㈜판타지오픽쳐스) 속 허옥란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그가 옥구슬 굴러가듯 맑은 목소리로 “강냉이 사세요~”라며 등장할 때 허삼관을 포함한 현장 인부들은 모두 넋이 나간다. 누군가의 대사처럼 ‘전쟁통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미모를 가졌으니 오죽하랴.
메가폰을 잡은 하정우 감독은 허옥란 역에 단번에 배우 하지원(37)을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할 때부터 그의 머릿속에 허옥란은 하지원이었다. 도도하고 다소 뻔뻔한(?) 젊은 허옥란부터 생활력 강한 억척 아줌마 허옥란, 거기에 모성애까지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던 거다. 게다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미모와 매력은 필수 옵션이었다.
물론 하지원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자신과 허옥란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빠도 너무 바빴다. 그가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건 드라마 ‘기황후’ 촬영이 한창이던 때. 일주일에 5일 이상 밤을 지새우는 고된 스케줄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솔직히 시나리오를 볼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거절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왕이면 정중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정우와 약속을 앞두고 밤새 시나리오를 읽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 이미 하지원의 마음은 반쯤 움직인 상태였다.
“정말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게다가 위화 문어체의 매력과 슬픈 코드를 해학적으로 그린 게 마음에 들었죠. 그래서 사실 100% 거절에서 50%로 마음이 바뀐 채 감독님을 만났어요(웃음). 출연 여부를 떠나서 어떻게 만들지도 궁금했고요. 어쨌든 만나서 허옥란에 제가 어울리지 않을 거 같다는 의사는 전달했죠. 그랬더니 너무 잘 어울린다고 저 말고 다른 배우는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저 자신에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왜 나랑 어울릴까 싶으면서 일종의 도전의식이 생긴 거죠.”
영화 ‘허삼관’에서 허옥란을 열연한 배우 하지원 [사진=NEW 제공] |
“모성 연기는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부담이 됐고 자신이 없었죠. 근데 막상 또 촬영에 들어가니 괜찮아지더라고요(웃음). 그냥 제가 표현하는 허옥란을 그리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현장에서도 편하게 놀았고요. 또 워낙 아이들이 저를 잘 따라줘서 굉장히 편했어요. 계속 안아주고 싶고 같이 놀고 싶고 점점 진짜 아들 같았죠. 자연스레 릴렉스도 됐고요. 아무래도 친근해지니까 여느 현장보다 전체적으로 편하고 재밌었어요. 그게 제 엄마 연기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됐죠.”
아이들 이야기에 금세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앞서 하정우가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밝혔듯, 하지원은 극중 아들 일락·이락·삼락으로 등장하는 아역배우 남다름·노강민·전현석에게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촬영이 끝나면 순천 시내로 나가 장난감을 사주기도 하고 오락실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실제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그를 흔든 장본인들도 이 귀요미 삼 형제다.
“살면서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조카가 아닌 진짜 제 아이요. 동시에 가족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죠. 일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연기하는 것도 좋은데 가족이 주는 따뜻한 행복이 아주 크다는 걸 새삼 느낀 거예요. 그러니 자연스레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요. 원래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달라진 거죠. 알콩달콩 아주 예쁘더라고요.”
왜 지금까지 결혼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그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걸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시간 개념이 명확히 없었다고. 그래서인지 데뷔 20년이 다 돼 간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것도 역시 하지원 쪽이었다.
“성격상 지난 시간을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죠. 이 순간에 집중하니 지금이 2005년인지 2015년인지 모르나 봐요(웃음). 게다가 직업상 시대적으로 과거·현재를 오가며 살잖아요. 나이도 17살도 됐다가 제 나이가 됐다가 하고요. 거기에 충실해서 재밌게 지내다 보니 배우가 아닌 여자 하지원의 시간 개념도 인지하지 못한 거죠. 그래서 20년이 돼 가서라기보다는 그냥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재밌고 다양한 연기, 예를 들면 누군가의 인생을 더 깊이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악역, 1인 2역도 해보고 싶고요.”
무언가 도전하고 정복하고 싶은 성향이 강하다는 그는 그렇게 끊임없이 하고 싶은 연기를 읊었다. 그럼 배우가 아닌 평범한 여자 하지원이 올해 정복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제법 오랜 시간 고민하던 그는 “오퍼레이션 스마일(Operation Smile)로 세계 정복을 해봐야겠다”며 웃었다. 오퍼레이션 스마일은 국제 의료 비영리단체(NGO)로 선천적 구순구개열 등 안면기형 어린이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는 세계적인 의료 봉사단체. 하지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아시아 여성 최초로 국제 홍보대사로 위촉된 바 있다.
“오퍼레이션 스마일 때문에 베트남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바로 옆에서 안면기형 어린이의 수술과정을 지켜봤는데 정말 많이 울었죠. 정말 프린세스로 바뀌는 순간이잖아요. 그 순간이 아주 감동적이었죠. 그래서 올해 개인적인 바람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요. 먼저 제 가족들에게 다 같이 가자고 할 거예요. 그러다 보면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도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액션 여신’ 하지원, 여전히 액션에 목마르다 |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