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찾아줘' 촬영 중 이야기를 나누는 데이빗 핀처 감독(오른쪽)과 주연배우 벤 애플렉 [사진=AP/뉴시스] |
■표면과 내면 : ‘나를 찾아줘’의 풍경
‘나를 찾아줘’의 물질적 세계는 캐릭터들의 내면 상태와 경제 불황 시기 미국의 자화상을 비춰준다. 덕분에 영화 속 배경은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들여다보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최면을 거는 듯 절묘한 각도에서 어둡게 그리는 일종의 누와르 아메리카나가 탄생한 셈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촬영 감독 제프 크로넨워스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도널드 그레이엄 버트, 의상 디자이너 트리시 서머빌, 편집 커크 백스터 등을 비롯해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들과 낯설고도 친밀한 느낌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를 만들었다.
특히 크로넨워스는 핀처 감독과 함께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다. 그 유명한 ‘파이트 클럽’이 대표적이다.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미국판 때도 그랬다. 제약에서 벗어난 독특한 비주얼을 만들어온 두 사람은 ‘나를 찾아줘’의 묘한 분위기와 디테일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미국 중서부 교외에서 촬영했다.
“길리언의 각본을 읽은 후 데이빗 핀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캐릭터들과 그들이 심리적으로 펼치는 체스게임과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변화를 직접 겪었다. ‘이렇게 깊고 어두운 여정을 비주얼로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을까?’ 심히 고민했다. 관객이 시각적으로 길리언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의무감까지 느껴졌다.”<크로넨워스>
촬영은 세인트루이스 외곽에서 100마일 떨어진, 미주리강에 인접한 도시 케이프 지라도에서 이뤄졌다. 영화에서 그곳은 닉의 미주리 고향 마을 카시지로 나온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도널드 버트는 케이프 지라도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케이프 지라도는 여러 모로 딱이었다. 다양한 경제 수준부터 1960년대부터 1970년대, 1980년대까지의 건축까지 죄다 갖고 있었다. 제멋대로 뻗은 쇼핑몰을 비롯해 바로 옆에 강이 흐른다. 주민들도 친절하고 도움도 많이 줬다. 그들의 놀라운 배려가 빛났다.”
“카시지는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대형 상점이 들어서면서 한 때 번영을 누렸지만 갑자기 경제가 악화된 미국의 여느 소도시와 비슷하다. 마치 옷장에 오랫동안 보관된 낡고 먼지 낀 웨딩드레스와 비슷하다고 할까. 매력과 아름다움은 여전하지만 꺼내지 않은 지 수십 년이 지나버린 낡은 옷처럼 묘한 곳이었다.”<크로넨워스>
가장 중요한 장소는 부유층 동네에 위치한 월세형 맨션인 닉과 에이미의 저택이었다. 새 것처럼 빛나지만 안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크로넨워스는 “닉과 에이미 부부의 집을 표현할 때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을 블라인드가 쳐져 있는 고립된 요새로 바꾸려고 했다. 작은 디테일에서도 각성하는 느낌이 묻어난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그레이엄 버트가 이끄는 프로덕션 디자인팀은 완벽하게 어울리는 집을 찾고자 고생했다. 닉과 에이미 부부의 집은 지나치게 웅장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가까우면서도 또 따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줄 만큼 넓어야 했다. 마치 ‘내 공간에 들어오지 마. 나도 네 공간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라고 무언으로 싸우듯 말이다. 눈에 거슬리는 천박한 느낌을 주지 않고 대저택 같은 느낌이 강하며 클래식한 요소도 가미했다. 다행히 프로덕션 팀은 운 좋게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자가 지은 멋진 집을 발견했다.
버트와 크로넨워스는 데이빗 핀처 감독과 작업이 더욱 견고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크로넨워스는 “그간 밤에 좀 더 편하게 자는 법을 배웠다. 우리 모두 결단력과 효율성이 높아져 작업이 한결 쉬워졌다. 하지만 그대로인 것도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과 작업할 때는 매일 새로운 가르침을 얻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트 역시 “데이빗 핀처와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보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마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가려고 애쓰고, 이번 작품도 그랬다. 데이빗의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너무나 많은 요소가 담겨 있고 처음 봤을 때 말초적으로 다가오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스며들어 이해된다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게 바로 그 요소가 아닐 때도 많다. 그게 그만의 예술성이다”라고 극찬했다.
■스릴러에 풍미를 더한 사운드
‘나를 찾아줘’의 강렬하고 미묘한 분위기를 표현해줄 음악을 만들기 위해 데이빗 핀처 감독은 또 다시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앨범을 함께 작업했고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호흡을 맞췄다.
레즈너는 핀처 감독이 구조에 연연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작업하기에 매번 색다른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데이빗 핀처와 함께 한 두 편의 영화에서 정말로 효과적인 작업 방식을 활용했다. 음악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된다. 매번 작업은 데이빗의 설명을 듣고 토론하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열정과 깐깐함이 대단하다.”
이들은 감독과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 경제 및 사회적 변화에 따른 시간과 공간에 뒤틀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미국 중서부의 잠재력과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 담보로 넘어간 대저택과 버려진 시내 건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사람들이 꾸는 꿈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주변의 모든 것과 분리해버리는 작업이 영화라는 철학적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면서 어떤 사운드와 악기, 컬러로 영화적 느낌을 표현할지 고민했다. 모두가 다 지쳐버린 괴로움을 표현하는 소리를 내고 싶었다.”<트렌트 레즈너>
레즈너와 로스는 영화를 보기 전에 개념에 따라 작곡하고 영화가 완성되는 동안 계속 갈고 닦는 방식을 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창작의 고통이 요구되는 힘겨운 작업이지만 예기치 못한 성과를 얻기도 한다.
“구조와 견본을 토대로 거의 잠재의식적으로 작업한다. 그런 식으로 몇 주 동안 일한 후에 우리가 만드는 음악이 데이빗의 생각과 통하는지 들려준다. 이런 식의 작업을 족히 서른 번은 반복한다. 하지만 이런 낡고 고집스런 방식이 옳다는 걸 우린 믿는다.”<트렌트 레즈너, 끝>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