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새침하고 도도한 이미지. 말을 건네면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차갑게 상대를 응시할 것 같은 느낌. 배우 고준희(29)에 가진 선입견이었다. 그런데 그와 마주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모든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지나간 사랑 이야기부터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메이크업 이야기까지, 마주한 고준희는 되레 걱정될 만큼 숨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귀여운 애교(?)로 얻은 셀카봉 선물에는 소녀같이 웃으며 “같이 찍으라고 만들어진 거니까 사진 한번 찍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의 반전 매력에 홀려 “야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감동적인 신작과 비슷한 매력을 지녔다”고 하자 “생각보다 괜찮은 매력?”이라고 받아치며 또 한 번 환하게 웃었다.
고준희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똑 닮은 러블리 걸로 돌아왔다. 23일 개봉한 영화 ‘레드카펫’은 19금 영화계의 어벤져스 군단과 이들에게 제대로 낚인(?) 골 때리는 흥행 여신의 오감자극 에로맨틱 코미디다. 19금 영화 촬영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영화는 꿈을 좇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녹이며 따뜻한 감동으로 청춘을 위로한다.
“준비 과정이 길었다는 점이 가장 끌렸어요. 사실 여배우와 에로영화 감독의 사랑, 너무 동화적이잖아요. 현실에서는 힘든, 영화라서 가능한 일이죠. 근데 이 이야기에 어느 정도 감독님 이야기가 들어갔다고 하니 무턱대고 허구는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에로영화 감독 출신, 입봉 감독이라는 사실에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요. 오히려 더 많은 준비를 했을 거로 여겼죠.”
극중 고준희가 열연한 인물은 19금 어벤져스 군단에 낚인 톱 여배우 은수다. 어린 시절 CF 하나로 대세 아역배우가 된 그는 자신감도 넘치고 자존감도 세지만, 의외로 허당기 충만한 캐릭터. 물론 은수처럼 아역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같은 여배우로서 그는 은수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이해했다.
“은수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아서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쿨하고 밝게 행동하는 친구죠. 저 역시 일할 때 그런 면이 있고요. 왜 연애할 때도 정우(윤계상)에게 먼저 뽀뽀해도 되느냐고 묻잖아요. 원래 대본에 없던 부분인데 제가 촬영하면서 추가했어요(웃음). 아마 그런 면이 저랑 닮지 않았을까 해요. 일이나 연애에 있어 먼저 말하고 적극적인 스타일이죠.”
이렇게 은수의 연애 코치(?)를 자처한 그에게 혹 사랑을 위해 은수처럼 제작보고회장을 뛰쳐나갈 용기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니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사랑에 있어 용기가 없어진단다. 내친김에 여자 고준희의 연애사에 대한 질문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예상외로 쿨하게 “지난해 끝이 났다”고 털어놨다.
“은수의 용기는 부럽죠. 현실에서는 할 수 없으니까 대리만족도 느꼈고요. 사실 드라마 ‘야왕’ 촬영하면서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오래 만나서 그런지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 후로 연애는 못했어요. 촬영으로 바쁘기도 했고 용기도 없어졌죠. 어렸을 때는 사랑 앞에서 굉장히 파이팅 넘쳤거든요(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은 나보다 부모님이나 회사가 받는 피해에 대한 걱정도 커졌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바람은 있죠.”
비록 나이가 들면서 사랑의 용기는 줄었지만,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더 넓어졌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훨씬 낙천적인 사람이 됐고, 작은 일도 감사할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됐다. 이제는 무턱대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자신의 위치에서 즐기며 일하고 싶다는 그다.
“운 좋게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야말로 행운이었죠. 그 후는 제 몫인데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꾼 게 아니라서 그런지 늘 절실함이 부족했어요. 촬영하다 혼나면 ‘엄마, 아빠도 안 그러는데 왜 이래’란 생각이 먼저였죠. 철도 없고 불평불만이 많았어요. 배우도 아니면서 배우 마인드만 있으니 혼자 힘들었던 거예요(웃음). 그러다 스물여섯 즈음부터 생각이 변했어요. 좀 성숙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자 싶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일도 즐기게 되더라고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했던가. 일을 즐기기 시작한 후 그의 달력은 스케줄로 가득하다. 특히 최근에는 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레드카펫’ 홍보 활동과 함께 임상수 감독의 신작 ‘나의 절친 악당들 (가제)’ 촬영이 한창인 것. 요즘 거의 밤을 새운다는 그는 대뜸 “요즘 해가 몇 시에 뜨는 줄 아느냐. 여섯 시 반”이라며 장난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바쁜 스케줄에 목소리는 다 쉬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의 절친 악당들’ 촬영이 한창 절정이라 계속 밤새고 있어요(웃음). 영화에서 윤춘호(ARCHE·아르케) 디자이너의 옷을 장기적으로 입어서 잠시 짬을 내서 서울패션위크도 다녀왔고요. 이번엔 은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듯해요. 사랑을 못 받은 캐릭터죠. 렉카 모는 친구인데 어렸을 때부터 폐차장에서 살아서 자기방어도 엄청 강해요. 확실히 밝은 캐릭터는 아니죠. 새로운 모습 또 보여드릴 테니까 기대 많이 해주세요.”
“터닝포인트는 ‘우결’, 대표작은 단발머리?” 최근 고준희는 ‘레드카펫’ 홍보 중에 여러 번 셀프디스(?)를 했다. 먼저 제작보고회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을 묻는 말에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결혼했어요’(우결)을 꼽았고, 최근 출연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 출연, 대표작을 ‘단발머리’라고 했다. 물론 두 번 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그의 발언은 기사화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단발머리나 ‘우결’은 진짜 웃기려고 한 거예요. 이상하게 제 안에 개그본능이 좀 있어요(웃음). 평상시에도 좀 웃기고 싶은 생각이 크죠. 근데 아무래도 모르는 분들이 듣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제가 원래 예능 울렁증이 좀 있어요. 그러다 서른 살이 되기 전, 이십 대 마지막에 예능을 도전해보자 해서 ‘우결’을 찍었죠. 그동안 좀 도시적인 직업여성을 많이 연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예능에서는 평상시 모습을 보여주자 싶었죠. ‘우결’이 터닝 포인트는 아니지만, 확실히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 계기는 됐어요. 사실 그 이후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처럼 좀 말랑말랑한 캐릭터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왔고요. 그전에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 사이에 낀 키 크고 섹시한 이미지의 시나리오가 많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도전이 연기적으로도 좋은 기회가 된 듯해요.”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