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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윤계상 "긍정에너지 가득한 진짜 저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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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국민 그룹으로 사랑받던 god를 홀로 떠나 배우로 전향한 지 정확히 10년, 많은 게 변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배신자’라고 욕도 먹었고 가수 출신 배우라는 따가운 시선도 받았다. 하지만 이 악물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연기가 절실했고 가수 활동만큼이나 가슴이 뛴 일이었다.

그렇게 배우 윤계상(36)은 조심스럽게, 또 간절하게 스스로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하지만 지나치게 완전한 변신을 꿈꾼 탓이었을까. 스크린 속 윤계상은 줄곧 어둡고 무거웠다. 그리고 그 느낌을 안은 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다시 관객 앞에 돌아온 그는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린, 10년 전 모습이었다. 신작 ‘레드카펫’ 속 윤계상은 밝고 에너지 넘쳤으며 가장 윤계상다웠다. 직접 마주한 그 역시 한결 편안해 보였다.

23일 개봉한 영화 ‘레드카펫’은 19금 영화계의 어벤져스 군단과 이들에게 제대로 낚인(?) 골 때리는 흥행 여신의 오감자극 에로맨틱 코미디다. 19금 영화 촬영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영화는 꿈을 좇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녹이며 따뜻한 감동으로 청춘을 위로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요. ‘풍산개’ 찍고 허리를 다쳐서 일 년 정도 쉬기도 했고 정신 상태를 바르게 할 시간도 좀 필요했죠(웃음). 아무래도 배우 시작하고 8년 동안 어두운 영화, 그늘진 면을 다룬 작품에 많이 출연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죠.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집중했고 삶이 깨져버렸어요. 그렇게 정신이 바닥을 쳤을 때 또 감사하게도 ‘레드카펫’ 같은 밝은 영화를 만났고요. 어쨌든 밝은 영화로 찾아뵙게 돼서 다행입니다. 기분도 좋고요.”

극중 윤계상이 열연한 정우는 경력 10년 차 베테랑 에로영화 감독이다. 정사보다는 정서를 강조하는 그에겐 언젠가 부모님께 자신의 이름이 걸린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꿈이 있다.

“저 역시 에로영화 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건 사실이죠. 그런데 찍어보니 잘못된 생각이더라고요. 사실 촬영 시작할 땐 영화가 19금이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들이 공사한 채 돌아다녔죠. 처음엔 저도 엄청 긴장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옷을 입은 거처럼 보이더라고요. 배우들, 스태프들 모습 역시 다른 촬영장과 똑같았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도요.”

이번 영화를 망설임 없이 출연한 이유 중 하나는 메가폰을 잡은 박범수 감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있다. 정우 역시 박 감독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된 인물이다. 실제 박 감독은 과거 10년 동안 270여 편의 성인 영화를 찍은 에로영화 감독이다. 이제야 첫 상업 영화 데뷔를 앞둔 감독과 가수 출신 배우로 10년을 살아온 배우, 세상의 오해와 편견과 맞서며 치열하게 산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됐다.

“대개 입봉 감독은 근심과 두려움이 많잖아요. 근데 박 감독님은 그런 게 전혀 없었죠. 저 에너지면 충분할 거라 믿었어요. 감독님이 또 에로영화를 찍던 분이고 저 또한 가수 출신 배우라 선입견과 오해에 대한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부분에 서로 많이 의지하고 고민을 나눴죠. 게다가 열심히 충실하게 하는 배우들이 모였고요. 꿈을 좇는 과정 속 배우와 감독이 그런 영화를 만든 거죠.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반면 대중(혹은 팬)의 입장에서 이번 영화가 반가운 이유를 꼽자면, 앞서 살짝 언급했듯 윤계상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간 그는 작정이라도 한 듯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 ‘집행자’(2009), ‘풍산개’(2011) 등을 통해 묵직한 연기를 해왔다. 물론 이제 와 그의 과거 연기를 논할 생각은 없지만, 돌연 다시 밝은 이미지로 돌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배우로 빨리 인정받을 줄 알았어요. 오버였죠(웃음). 오히려 거기 집중하다 보니 말도 없어지고 술, 담배에 절어서 살았어요. 정신이 피폐해지고 몸도 망가졌죠. 아프니 후회되더라고요. 몸까지 버리면서 뭘 얻고자 하는가, 성공의 끝을 잘못 생각한 제 불찰이었죠. 수상, 흥행처럼 기준을 잡아놓으니 좋았던 건 안 보이고 매 순간 목말랐어요. 그러다 행복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고 생각을 전환했더니 많은 게 달라지더라고요. 조금씩 자신감 있고 긍정에너지 충만했던 예전의 윤계상으로 돌아오게 됐죠. 그래서 생각의 전환이 중요한가 봐요(웃음).”

어느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풍산개’ 속 풍산을 연기하는 그에게 편안해 보인다고 하자 금세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이렇게 밝아진 이유에 최근 재결합한 god와 연인 이하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 늘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사랑하는 god 멤버들과 이하늬를 향한 깊은 속내를 말로 형용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밝아진 이유에는 분명 멤버들과 그 친구(이하늬)가 있죠. 사실 god 재결합 때는 엄청 두려웠어요. 배우로서 해온 걸 잃어버릴까 걱정도 됐고요. 교만한 생각이었죠. 물론 제가 틀렸고요. 사실 저를 비롯한 모두가 많이 변했어요. 아시다시피 태우는 아빠가 됐고, 호영이나 저나 모두 힘든 일을 겪으면서 인생의 또 다른 시간을 겪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다들 작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됐죠. 솔직히 god도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실 줄 몰랐어요. 진짜 말 그대로 로또 터진 거지(웃음).”

로또 터진 게 어디 god 활동뿐이리라. 올 한해 일, 사랑, 우정 모두 로또 터진 이 남자는 올 하반기 또 다른 영화 촬영을 예고했다. 최근 보고 있는 시나리오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밝은 역할이라 예고했다. 물론 그렇다고 밝은 모습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내년 초 개봉 예정인 영화 ‘소수의견’에서는 또 묵직한 모습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질 예정이다.

“지난 시간 동안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너무 많았어요. 그 욕심이 제 목을 조른 거죠. 그 욕심에 연기도 너무 불사 질렀고요(웃음). 어쩌면 보는 분이 불편한 건 당연했어요. 좀 이제는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비교하며 욕심부리고 이건 정말 해서 안 될 짓인 걸 직접 깨달았으니까요. 이젠 오버하지 않는 편안한 연기를 다시 해보려 합니다. 새로운 캐릭터 연기도 선보이고요.”




“연인 이하늬, 연관 검색어에 제 이름 뜨는 것도 미안해요”


앞서 윤계상은 한 인터뷰에서 “3년 안에 결혼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 따라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공개 연애 중인 연인 이하늬가 있지 않은가. 최근 이하늬가 윤계상이 몸담은 사람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이적하면서 결혼설에 휩싸였던 후라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욱 가혹했다.

“진짜 악플(악성 댓글)이 어마어마했어요(웃음). 댓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그런 말 여자들이 제일 싫어해요’였죠. 하늬랑 보고 엄청 웃었어요. 사실 그 말을 한 이유가 피해 주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하늬는 배우로 승승장구해야 할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 아이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제가 나오는 거 자체가 미안해요.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데 사실 제작사나 감독님 입장은 다르단 말이죠. 이하늬라는 배우 뒤에 윤계상이란 그림자가 따라오는 거니까요. 특히 멜로 장르는 배우와 배우의 만남이 그려져야 하는데 저 때문에 온전히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딱 잘라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 진짜 욕 엄청 먹었습니다(웃음). 물론 저나 하늬나 당장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사실이에요. 지금은 배우로서 전진하기로 했고 서로 더 잘되길 바라죠.  

물론 하늬의 소속사 이전 때문에 결혼 이야기가 불거진 것도 있어요. 근데 저 정말 절대 설득 안했거든요. 그냥 전 가만히 있고 두 분(이하늬와 소속사 대표)이 알아서 하라고 했죠. 물론 자리를 만들어 주기는 했는데 그건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하늬가 제 매니지먼트에 대한 걸 자연스럽게 보면서 마음에 든 부분이 있어서 만나길 원했으니까요. 그 뒷일은 정말 몰랐어요. 저도 나중에 통보받았다니까요. 지금도 계약조건 이런 거 아무것도 몰라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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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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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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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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