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영화 프로모션 인터뷰 차 마주한 배우 차태현(36)은 쉴 새 없이 ‘탁 감독’ 김형탁 감독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아니 그 사람이 ‘라디오스타’ 나올 정도야? 내가 그쪽에다 정말 괜찮겠냐고 물었다니까”라며 디스(?) 하는 건 물론, 작품 비판에도 거침없다. 그런데 이렇게 짓궂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또 대뜸 장점을 늘어놓고는 “그럴 때 보면 감독은 감독”이라며 허허 웃었다.
그럼 탁 감독은 어떠냐고? 마찬가지다. 무슨 말을 내놓기만 하면 ‘누가 그러냐? (차)태현이가?’라고 되묻는 게 가장 먼저다. ‘아, 정말 별말을 다 한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역시나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오래된 연인마냥 밀었다 당겼다, 으르렁거리다 또 이내 얼굴을 마주하고 유쾌하게 깔깔깔 웃어버리는 동갑내기 친구 김형탁-차태현 콤비가 신작 ‘슬로우 비디오’로 돌아왔다.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헬로우 고스트’ 이후 두 번 째다. 영화는 남들이 못 보는 찰나의 순간까지 보는 동체 시력의 소유자 여장부가 대한민국 CCTV 관제센터의 에이스가 돼 화면 속 주인공들을 향해 펼치는 수상한 미션을 담았다.
“탁 감독이랑 이상하게 개그코드가 맞아요. 이상한데 웃기고 끌리는 거야. 사실 탁 감독이 글을 참 빨리 잘 써요. 보고 있으면 대단하죠. 확실히 그럴 때 보면 작가 출신 감독다워요. 저 여태껏 영화 시사회하고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에게 이렇게 질문 많이 하는 거 처음 봤어요. 뭔가 독특해. 근데 포장이 너무 많이 돼 있어. 그 사람이. 이번 영화 시나리오 저에게 준 것도 저밖에 몰라서일 걸요?(웃음)”
극중 차태현이 열연한 여장부는 남들이 못 보는 찰나의 순간까지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시력 탓에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된 여장부는 20년 동안 TV 드라마만 보며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CCTV 관제 센터에 취직한다. 그는 특별한 능력과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CCTV 화면 속 주인공들을 향해 수상한 미션을 펼치기 시작한다.
“기억에 오래 남을 캐릭터죠. 그동안 맡은 역할 중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였고 가장 많이 연기해야 했어요. 제가 쓰는 말투나 행동이 아니니까요. 신선했어요. 사실 와이프는 처음 시나리오 보고 ‘잘 모르겠다. 근데 너 탁 감독님 거니까 할 거잖아’ 이랬거든요. 그렇지 할 거지(웃음). 아무튼, 영화 보고 왜 했는지 알겠다고 말하더라고요. 흥행을 떠나서 ‘헬로우 고스트’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죠. 주인공의 성장기를 봐야 하는데 감독의 성장기를 본 거지(웃음). 어쨌든 너무 뿌듯했어요.”
사실 영화의 소재가 된 동체 시력은 대다수 사람에게 생소한 단어다. 동체 시력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보는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능력. 직진해오는 사물을 시각적으로 식별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모든 움직임을 식별하는 능력과 이에 대한 반응으로 사용된다.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한데 김 감독은 ‘뛸 수 없다’는 설정까지 가미, 영화의 재미를 살렸다.
“저도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또 동체 시력이란 소재만 따오고 넘어지고 이런 부분은 다 설정이잖아요. 만들어 낸 거라는 알고 되게 배신감 느꼈죠. 난 속았어(웃음). 뭐 연기할 때는 똑같았어요. 어차피 나중에 편집하면서 슬로우로 가는 거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죠. 시력 잃은 연기는 영화 ‘챔프’(2011) 때도 해서 힘들지 않았고요. 근데 제가 이번에 생각을 해봤는데 정말 어디 써먹을 때 없는 능력이에요. 투시도 아니고 일상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진짜 ‘1박 2일’에서 게임 이기는 거밖에 없다니까?”
극중 여장부를 차태현이 연기해서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 여장부는 첫사랑 수미(남상미)를 잊지 못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차태현이야말로 대표적인 첫사랑의 아이콘이 아닌가. 그는 지난 2006년 작사가 최석은 씨와 13년 교제 끝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차수찬) 하나, 딸(차태은, 차수진) 둘을 두고 있다. 이처럼 첫사랑의 아이콘이 또 이렇게 첫사랑 연기를 했으니 여성 관객들의 마음이 요동치는 건 당연하다.
“그러네, 그러고 보니 정말 첫사랑에 관련된 작품을 했네요. 근데 또 좀 다르게 생각하면 기존 작품들이 첫사랑을 소재로 한 게 유독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살짝 지겨워졌을 거예요. 사실 ‘챔프’의 참패로 지금 관객들은 나에게서 또 가족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계획해서 나온 건 아니지만, 그 뒤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를 했고요. 오랜만에 한 코미디였는데 큰 내용 없이 성공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도 잘 계산해야겠다 싶었죠.”
이처럼 연기를 해오고 새로운 작품을 내놓으며 직접 겪은 일들이 많기에 그는 더욱 고민이 많았다. 때문에 촬영에 들어간 9월 말 크랭크인 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2’와 친형 차지현이 대표로 있는 제작사 AD406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제작된다는 전제하에) 촬영 이후에는 조금 본격적으로 변신을 꾀해볼 생각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려고요. 부부관계를 다루는, 호흡이 긴 드라마나 아니면 아예 스릴러 등에 출연해서 장르적으로 바꾸든 하려고요. 근데 사실 스릴러는 저한테 안 들어와요. 저한테 들어온 거 중에 영화화된 게 없어(웃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 물론 기본적으로는 밝은 영화를 하면서 사랑받는 게 제 틀이지만, 그것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틀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지겹잖아요(웃음).”
“‘엽기적인 그녀2’, 욕먹더라도 견우가 보고 싶어요”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차태현은 9월 말 ‘엽기적인 그녀2’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이번엔 전지현 대신 f(x) 빅토리아와 호흡을 맞춘다. 영화는 두 사람의 좌충우돌 신혼 이야기를 담을 예정. 하지만 앞서 해당 소식이 보도되고 나서 그는 예상치 못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던 그는 금세 “워낙에 기대작이라 그렇지. 뭐”라며 웃었다. “저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조근식 감독의 ‘품행제로’(2002)를 너무 재밌게 봤죠. 그게 영화를 하는 하나의 이유에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들어보니까 되게 재밌는 게 많이 있었고요. 사실 전부터 ‘엽기적인 그녀2’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 일본 할 거 없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봤을 때 가장 ‘엽기적인 그녀1’ 스러운 구성이었죠. 물론 전작만큼의 흥행은 절대 없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나와서 어떤 욕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정말 힘들게, 생각 많이 하고 내린 결정이죠. 되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냥 견우가 되게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이 든 견우가 스크린에 나온 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고민이 없어졌죠. 개인적으로는 견우라는 이미지가 부담스럽거나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왜 제가 말 타면 ‘말 타는 견우’, 장풍 쏘면 ‘장풍 쏘는 견우’라고 하잖아요(웃음).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게 제 연기 스타일인 거죠. 견우가 차태현이라는 사람하고 제일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라서 한 거예요. 그리고 저는 무슨 역이 들어와도 차태현화 시키는 게 되게 많아요. 자연스러운 반응인 거죠.”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