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해전 일부 [사진=CJ엔터테인먼트] |
한국인조차 ‘명랑’인지 ‘명량’인지 헷갈리는 ‘명량해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이순신 장군이 전선 12척(13척이라는 기록도 있다)으로 왜군 함선 133척과 맞선 해상전투다. 왜선 133척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치이며, 333척이라는 다른 기록도 발견된다.
당시 이순신은 통제사에서 물러나 있다 원균이 다대포에서 대패하고 해상권을 상실한 뒤 백의종군한 상황이었다. 이순신 휘하에 있던 전선은 불과 12척. 이순신이 얼마 남지 않은 수군력을 우려하는 선조에게 남긴 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는 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명하다.
명량대전의 전조는 1579년 8월28일 어란진 앞바다에서 감지됐다. 이날 왜군 함선 8척이 이곳에 나타나자 이순신이 거느린 수군은 장도로 나섰고, 이튿날에는 전남 진도 벽파진에 도착해 보름간 진을 쳤다.
마침내 명량해전이 시작된 것은 엄밀하게 따져 지난 9월14일이었다. 이날 왜군 함선 200여척 가운데 55척이 어란진에 도착하자 이순신은 수군에 경계령을 내리고 숨죽여 기다렸다. 이틀 뒤인 9월16일 오전 11시경 왜군 함선이 비로소 진격했는데, 이순신이 쳐 놓은 수중철색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진하던 함선의 발이 묶이자 뒤따르던 왜군 함선은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급한 조류를 미리 읽은 이순신의 계책에 빠진 왜군 함선들은 차례로 충돌하며 대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출동한 이순신의 함대는 오도 가도 못하는 왜군 함선 133척 중 31척을 박살내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순신이 출격 전 남긴 말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는 영화 ‘명량’에도 등장한다.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명량해전’에서 거둔 전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어 크게 주목 받았다. 명나라가 이순신의 명량해전에 느낀 바 있어 수군 강화에 나섰다는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다만 선조는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무능한 왕으로 인식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