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을 달리한 바이주 명장을 애도함
우리 전통주 빚기에 관심이 있는 향음인들이라면 맛과 향이 뛰어난, 그래서 자신이 좋아함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명주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당나라 때 주선 이백(李白)이 지독히도 좋아했던 명주를 만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성은 기(纪)씨, 이름은 춘(春)이라는 노인이었다. 조상이 고관을 지낸 명문집안의 후손이었으나 모함에 의해 멸문된 후 기씨 노인은 안후이(安徽) 성 동남부 안후이(安徽) 현의 쉬안청(선성,宣城)이란 곳으로 이주하여 술을 빚어 파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이백은 술을 좋아했기에 당연히 명주가 생산되는 지역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특히 기씨 노인의 라오춘주(纪叟老春)를 좋아하여 53세에서 62세의 10년 기간(753-762)에 일곱번이나 이곳을 방문했다 한다. 쉬안청은 이백이 당 현종시 한림원(翰林院)에서 잠시 관직을 맡았다가 그만두고 실의속에 처음 찾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기의 많은 명시들을 이곳에서 지어 내었다.
이백이 마지막 방문을 하여 기씨 노인을 만나려 했을 때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픈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애도의 시를 한 수 만들었으니 그것이 '술 잘빚는 쉬안청의 기씨 노인을 곡하며'( 哭宣城善酿纪叟) 라는 시이다.
(이백도 기씨노인이 죽은 그 해에 사망하였다.)
《哭宣城善酿纪叟》
紀叟黃泉裏,
還應釀老春。
夜臺無李白,
沽酒與何人。
기(紀)노인은 황천에서도
여전히 술(老春酒)을 빚고 있겠지.
저승에는 이백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을 팔는지...
세째 구(夜臺無李白)의 '李白'대신에 '曉日'이란 단어가 들어간 다른 버전도 있다. 어느 것이 이백 자신이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시의 맛으로는 전자의 버전이 더 나은 것 같다.
( 夜臺無'曉日' 沽酒與何人, 저승에는 '새벽'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을 팔는지... )
이 시는 1,100여수에 이르는 이백의 시 중 지명도로 보면 비교적 낮은 시이다. 그러나 그 어느 시 보다도 이백의 호방하면서도 섬세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기씨 노인은 저승에서도 천직인 술빚는 일을 계속 하겠지만 주선인 자신이 아니면 과연 누가 그 많은 술을 소비해주겠냐는 식의 오만함을 보이면서도 한 편으론 자신이 그 만큼 좋아하는 술을 만드는 명장이 저세상으로 간 것에 대한 애틋한 정과 존경의 마음도 같이 표현하고 있다.
기씨 노인의 '纪叟老春'은 지금도 안후이성 지역에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 술이 유명해 진 것은 북송 건륭2년 송태조가 이백의 시를 읽던 중 '哭宣城善酿纪叟'란 시를 접하고 호기심에 가져오게 하여 시음한 후 그 맛에 탄복하여 연말연시나 명절에 이 술을 황실 연회용으로 쓰게 한 이후부터라 한다.
다만 술의 명칭은 당시 황실 관원중 '纪叟'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있어 술 이름에 '纪叟'가 들어 가는것을 황망해 하므로 '宣酒'로 개명하였다 한다. 안후이성에서 유명한 '宣酒特贡'(백주의 일종)이란 술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 전통주를 연구하는 모임인 향음에서도 이백같은 주선이 좋아할 수 있는 양조 명장과 명주가 배출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맘에서 이 시를 소개해보았다. [글= 향음 이철성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