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서정은 기자] 국내 연기금들의 갑(甲) 행세에 증권사와 운용사의 등이 터지고 있다. 연기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증권사와 운용사 영업맨들은 무리한 요구에도 '예스맨'을 자처하고 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 연기금은 국민연금을 포함해 2011년 말 기준 운용자산 규모가 421조원을 넘었다. 국민연금은 세계 연기금 중 네 번째로 크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을 잡기 위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연기금들의 콧대도 날로 높아져 간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모 연기금에서 (우리) 사장보고 수익률 보고를 하러 오라고 하더라"며 "보고를 위해 전체 매니저들이 출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기금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증권사나 운용사가 매달 수익률 보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운용하는 담당 매니저 뿐 아니라 전체 부서원을 보고에 동행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는 "거래하는 연기금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그런 요구를 받을 때면 난감한 경우가 있다"며 "성과가 나쁘다면 당장 그렇게 해야겠지만, 일상적인 보고 때도 그런 요구가 오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수익률 보고같은 공적인 업무 외에도 신경쓸 일은 많다. 이전과 같은 노골적인 접대는 사라졌지만 우회적인 서비스는 되레 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증권사나 운용사 등이 국민연금에 로비를 하다 적발되면 최장 5년간 공단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수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연기금들이 대놓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로 만나서 담당자들의 양복을 선물하거나 야구시즌에 야구티켓 등을 가져다 바친다고 하더라"며 "어쩔 수 없이 감시가 많아지다보니 우회적으로 업무 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연기금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할 때 경제금융 전망에 대한 세미나보다는 간접적으로 문화체험을 하게 해주는 것들이 많아졌다"며 "예를들어 클래식 전문가를 유료로 초청하는 식인데, 일반적인 영업과 겉보기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증권사나 운용사가 내부 인력을 활용하기보다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을 지출할지라도 비용을 내면서 챙긴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관행은 쉽게 뿌리뽑히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증권업계가 침체일로를 걷는 만큼 구원투수는 연기금 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연기금들은 보통 1년 단위로 수익률을 평가해, 부진한 곳은 돈을 회수하는 만큼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며 "증권사나 운용사들이 연기금 위주로 조직을 재편하는 만큼 이들의 파워는 더 세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서정은 기자 (love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