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기 기자]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만 특수목적회사(SPC)에 넘겨 매각을 추진하고 반양트리 등 다른 자산은 그룹 자체에서 개별매각을 추진한다.
5일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산은과 현대그룹은 매각 대상 계열사와 보유 자산 중에서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3사를 우선 산은 SPC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증권만 매각하면 현대자산운용사와 현대저축은행이 함께 처리되는 구조다.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은 현대상선 지분(25.9%)과 현대증권 자사주(9.83%)를 합쳐 36% 수준이고,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은 현대증권의 100% 자회사다.
이같은 방안은 매각대상 자산을 한꺼번에 처분해야 할 정도의 위기는 아니기 때문에 다른 보유자산 등은 차근차근 현대그룹에서 자체적으로 매각을 추진하면 된다는 판단에서 검토되는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사모펀드(PEF)형태의 SPC를 통해 현대증권을 우선 인수해 현대그룹에 현금유동성을 먼저 제공하고, 이후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산은관계자는 "일단 SPC에 담기 위해 현대증권과 100%자회사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을 실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SPC에서 다시 매각하는 작업은 병행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현대그룹은 조만간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의 매각 절차를 시작할 전망이다.
한편,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회사채 차환지원 등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22일에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 3개사와 항만터미널 사업, 벌크전용선 부문 일부, 부산 용당 컨테이너야드, 인천 항동 부지, 미국·중국·싱가포르 소재 부동산 등을 모두 SPC에 넘겨 총3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는 자구안을 제시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
반얀트리 등 다른 자산은 개별매각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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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강선우 구속적부심 기각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공천헌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강선우 무소속 의원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2부(재판장 김용중)는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 의원에 대한 구속적부심 심문을 진행한 뒤, "청구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공천헌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강선우 무소속 의원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은 강 의원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강 의원은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의 구속이 적법한지, 계속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를 법원에 다시 심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강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경 전 서울시의원으로부터 공천을 대가로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강 의원은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법원은 지난 3일 강 의원과 김 전 시의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 16일과 18일 강 의원을 소환해 조사했다.
hong90@newspim.com
2026-03-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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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 88세로 사망
[서울=뉴스핌] 송은정 기자 = 독재정권 시기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숨졌다.
26일 경기일보에 따르면 이근안은 전날 사망했으며, 현재 서울 동대문구 동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상태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5시20분으로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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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공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기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고문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과 옥살이 후유증을 앓다 지난 2011년 사망한 고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역시 1985년 9월 4일 '민청련 결성' 사건으로 구속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으로부터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바 있다.
주화 이후 그의 행적은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재조명됐다.
고문 의혹이 불거지자 1988년 수배됐고 약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가 관여한 공안 사건 가운데 일부는 이후 재심에서 조작 정황이 인정되며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이근안의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간첩이라 허위 자백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어부 정규용씨도 2014년 38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서울대 무림 사건'과 관련해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사과를 권고한 바 있다.
2006년 출소 이후 이근안은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적으로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생전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또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묘사된 고문 행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yuniya@newspim.com
2026-03-26 1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