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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국제칼럼]벤처 창업에 날개가 달리려면

기사입력 : 2013년10월31일 11:27

최종수정 : 2013년10월31일 11:35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픽사(Pixar Animation Studio)의 애니메이션은 늘 기운차다.

애플컴퓨터에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루카스필름 출신들이 만든 그래픽 사업이 잘 나가자 이를 통채로 사들인 것이 픽사의 시작이다. 픽사는 스티브 잡스의 선구안, 천재적 재능을 얘기할 때 꼭 증거물로 채택되곤 한다.

픽사가 최근 내놓은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출처=픽사)
픽사는 그러나 잡스를 빼고 얘기해도 도드라지는 존재다. 컴퓨터 그래픽(CG)만으로 만들어진 첫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는 눈을 확 뜨이게 했다.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기술의 발전이 제대로 융합되는구나란 생각을 갖게 해줬다. 디즈니와 손잡고 이후 만든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등도 마찬가지. 그러다 디즈니에 완전히 인수됐지만 픽사는 여전히 기발한 상상력과 기술의 발전이 결합하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픽사의 최근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를 봤다. 2001년 작품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이전 이야기)란 것도 기발했다. 애니메이션에서 프리퀄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내용도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 치부할 것이 아니다. 

몬스터 나라에서 최고의 직장인 '몬스터 주식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명문 '몬스터 대학교'에 입학한 마이크 와조스키(Michael Mike Wazowski)는 무섭기는 커녕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인해 좌절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겁주기 능력'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 반면 명문 괴물 가문의 자제 제임스 P 설리반(James P. Sullivan)은 노력하지 않아도 최고의 겁주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설리와 마이크 이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몬스터 대학교에서 퇴학당하게 된다. 그러나 설리와 마이크는 좌절하지 않는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그들은 몬스터 주식회사의 우편 잡일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그리고 갖은 노력을 통해 결국 핵심 부서인 겁주기 사업부에서 일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겁주고 얻는 에너지로 사업을 영위하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핵심 멤버로 등극한다는 것이 먼저 나온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펼쳐지는 얘기다.

유쾌했다. 대학을 나오는 것에 목을 메지 않아도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굳이 연결짓자면 잡스 역시 대학 중퇴자가 아니던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도 하버드대학에 들어가기만 했지 졸업하지는 않았고. 미국 사회의 유연성은 이렇게 곳곳에서 드러난다.

굳이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리에겐 여전히 '공식'이 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요즘은 대학원까지도 필수로 마치는 '학력'을 일단 쌓아야 하고 그래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되는 공식 말이다. 예외가 많아지고는 있지만 주류는 역시 이런 과정을 차근차근 밟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기 마련이다.

(출처=스타트업그라인드)
닷컴 붐이 일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많은 젊은 엘리트들은 이런 공식을 깨고자 창업에 나섰다. '벤처'란 말은 그래서 멋졌다. 

그러나 NHN이나 다음처럼 성공한 경우보다 아마도 실패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닷컴 붐이 워낙 크게 일었다 꺼지자 그 충격파를 맞은 까닭도 있을 것이고, 기술력은 갖췄지만 경영 능력이 없어 주저앉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만져보게 된 돈에 현혹돼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켜 회사까지 무너뜨린 벤처 기업인도 있었다. 당시 만났던 쟁쟁했던 벤처 경영인들 가운데 꽤 많은 수가 징역을 살기도 했다. 거짓 증자와 분식회계, 횡령 등의 이유로.

그런 분들 말고 상당히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는데, 창업할 때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창업자가 무조건 연대보증을 해야하는 까닭에 기업이 부도를 맞으면 창업자 인생까지도 주저앉고 마는 것이 대표적이다.

벤처기업은 당장은 사업모델 밖에 없으니 정부 지원을 받으려 하는데 이 때 창업자 본인은 반드시 연대보증을 하게 돼 있었다. 꼭 의도가 그렇다고 하긴 어렵지만 "혹시라도 부도가 나면 창업자 너의 재산을 다 몰수하겠으니 그 조건으로 돈을 받겠다고 서명하라"는 식인 것이다. 마치 '잠재적 도덕적 해이자'로 취급되는 셈. 

그리고 재산을 다 몰수당해도 더 내놓아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창업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그래서 재기해보려고 해도 어렵게 된다. 주저앉은 사람의 머리를 누르며 더 주저앉으라고 하는 것이 이 창업자 연대보증제도였다.

업계에선 이걸 없앨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고, 재도전을 지원하는 창업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며 정부도 지난 30일 단계적으로 창업자 연대보증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선 연대보증 대신에 금리를 조금 더 올려받는 식으로 하는 지원 대상을 늘릴 계획이고, 내년에는 기술보증기금이 기술력이 우수하고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창업기업에 대해 연대보증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업계에선 정책금융 대출 가운데 중진공의 창업지원자금만 면제가 확정됐을 뿐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하지만 그래도 연대보증제 폐지의 길이 열렸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또다시 미국의 예와 비교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창업의 산실' 실리콘밸리에선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기업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를 잘 갖추고 있다. 창업해 보겠다는 마음이 들게 할 만큼. 재기도 상대적으로 더 쉽다. 이것이 도덕적 해이를 낳고 있지만 이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

벤처 창업을 통해 큰 돈을 버는 것을 질시하거나 문제삼는 사회적 분위기도 적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우리나라와는 기본 마인드가 다르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업을 세우는 것에 소질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큰 기업이나 이해가 있는 기업에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새 벤처기업을 세우는 경우도 많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원래 기업에서 손을 떼고 대신 그로 인해 받은 자본으로 새 사업을 벌이는 것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를 세운 엘론 머스크는 전자결제 시스템 업체 페이팔 공동 창업자였다.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해 생긴 돈으로 테슬라를 세웠고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민간 우주 사업도 벌이고 있다. 페이팔 출신들이 새로운 사업 진출을 활발하게 꾀하고 있는데 이들을 '페이팔 마피아'라고도 부른다. 이 일원인 리드 호프먼은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을 창업해 또 성공신화를 썼다.

우리나라에서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간혹 이렇게 창업했던 기업을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면 '먹튀'로 보는 경우가 없지 않다. 악의적으로 자신의 이익만 염두에 두고 기업을 팔아넘긴다면 문제겠지만 창업자가 할 수 있는 몫을 다 했다고 판단하고 그 사업모델을 원하는 다른 기업에 매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메디슨 창업자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겸 KAIST 교수(출처=유튜브 화면 캡처)
벤처기업이 성장해서 대기업 계열사 못잖은 규모로 컸다고 비난할 것도 아니다. 큰 기업이 했던 '못된 갑질'을 일삼는다면 그건 문제겠지만 성장한 것 자체를 비난하는 문화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메디슨을 창업했던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KAIST 교수)은 최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신용불량 위험을 감수한 창업 의사는 10.5%였지만, 신용불량 위험 제거시 창업의사 69.4%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벤처가 왕성하게 된 것은 평균 1.8회 정도 실패를 한 뒤에 성공한다고 한다. 

그러니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돕되, 연대보증을 안 해 우려되는 도덕적 해이는 기업 재무상태를 투명하게 밝히도록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꾸 거부당하고 억눌리고 시도 자체가 어려우면 도전정신이 생기려다가도 뿌리까지 없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새로운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정신을 갖는 창업가들이 많아야 창조경제도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에 못 가더라도 창업을 장려하고 재도전을 지원하는 문화가 차근차근 생겨나길 염원한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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