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 vs "중기·농업은 재벌 지갑노릇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FTA(자유무역협정) 불모지였던 한국이 어느새 47개국과 FTA를 체결하며 통상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그간 통상전략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비판과 양적 성과에만 집착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얻은 무역확대라는 성과물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의 통상정책은 또다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외교통상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통상 정책의 축이 바뀌며 새로운 통상전략이 예고된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된 통상전략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한 1세대 통상, 외교부의 통상교섭본부가 주축이 됐던 2세대 통상을 거쳐 이제 산업통상형 체제를 의미하는 3세대 통상으로 버전이 업그레이드됐다. 뉴스핌은 박근혜정부가 추진중인 3세대 통상의 의미와 목표, 부처 간 이해관계, 한·중FTA 등을 중심으로 새 정부의 통상전략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註]
[뉴스핌=홍승훈 기자] "중국에선 4~5년마다 한국만한 시장이 하나씩 생긴다. 한중 FTA는 100년에 한번 오는 기회다. 역발상이 필요하다."(한중 FTA 찬성론자)
"중국 연태(煙臺)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가 한국 전체 생산량을 훨씬 웃돈다. 농산물 개방되면 한국 농촌은 끝장이다."(반대론자)
협상 개시 1년 넘게 다섯 차례에 걸쳐 회의를 했지만 진전을 보이지 않던 한중 FTA 협상이 최근 탄력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양국 정상이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에 합의하면서 1단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미 FTA 당시와 비교하면 사회적 논란은 크게 줄었다. 당시에는 '반미'라는 이념적 반발이 있었지만 중국에 대해선 이런 논란은 덜한 편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드넓은 땅덩어리와 노동력, 한국과의 지리적인 접근성을 감안할 때 그 파장은 한미, 한-EU FTA를 뛰어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실질적이고 꼼꼼한 대책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FTA를 이끌어가는 정책 당국도 어느때 보다 신중한 스탠스다. 통상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된 후 중소기업들과 농어민협회 등에 대한 의견수렴에도 적극적이고, 외교부 시절에 비해 내실을 다지면서 협상을 이끌려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특히 MB정부 시절 한미 FTA, 한EU FTA가 대표적이었다면 한중 FTA는 박근혜 정부 통상의 대표적인 통상 결과물이자 확실한 비교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정부 통상팀의 어깨가 한층 무거원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이란 것이 어느 한 국가에만 유리하고, 다른 상대에는 불리하게만 맺어질 수는 없는 법. 피해가 우려되는 농수축산분야와 일반 중소 제조업계에선 개방 수준에 대한 신중함과 실질적 대책마련을 주문하고 나선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그래픽: 송유미 기자] |
◆ "대일+원자재 무역적자, 대중 무역흑자로 메꿔"
정책당국과 대기업 중심의 산업계는 한중 FTA를 중국의 잠재력을 이용한 한국 수출무역 확대 기회로 삼는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산업구조를 고려해 일부 버릴 것은 버리되 이를 기회로 파이를 키워 한국 경제를 한단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셈법이다.
"연 10%대의 성장률을 보이는 중국에선 한국 규모의 시장이 3년에 한개씩 생긴다. 앞으로 7% 성장을 가정해도 4~5년마다 생겨난다. 중국을 빼고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한중 FTA를 추진중인 산업통상자원부 간부의 얘기다. 그는 또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수출의 25%가 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도 500억불을 넘었다. 현재 대일 무역적자와 석유 등 원자재수입으로 인한 무역적자를 대부분 중국과의 무역 흑자로 메꾸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2년간 우리의 경제성장률에 대한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중국이 52% 수준에 달했다. 사실상 중국이 없었으면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회복은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중 FTA를 통해 우리의 가공무역을 중국내 고착화시키는 등 중국 내수시장을 뚫는 것이 한국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의 열쇠라는 논리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정부 발간책자(함께하는 FTA 8월호) 기고문을 통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한국의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과 FTA를 통해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면 거래비용이 줄고 우리경제의 개선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로 인해 한국의 산업 구조조정 필요성도 불가피함을 동시에 언급했다. 김 교수는 "농업과 단순제조업은 매우 강력한 산업 구조조정이 수반돼야 한다. 한중 FTA가 기존의 FTA와 다른 점은 단순히 중국시장 접근기회 확대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근본적인 구조조정도 수반되는 산업구조 대변혁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 '소실대탐(小失大貪)'의 논리다.
◆ "한중 FTA 수준, 낮고 좁게…식량안보 문제도"
FTA 반대론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예컨대 왜 항상 중소기업과 농어민 등 약자들만 대기업과 재벌의 지갑 노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불만이다.
특히 최근의 애플 아이폰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서 보듯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존의 FTA를 무색케하는 자국산업 보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한미 FTA를 기본모델로 한 '판에 박힌 통상전략'만으로는 FTA 성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사과만 하더라도 중국 연태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규모가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보다 훨씬 많다. 결국 개방하면 한국 과수산업, 농업은 붕괴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는 식량안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현재 OECD국가 중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 산업논리를 중심으로 1차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보호책을 마련하지 않고선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은 좋기만할까. 한중 FTA를 두고 '농업은 손해, 제조업은 이익'이란 공식 역시 중국을 상대로는 적용하기 힘든 논리라는 점도 강조됐다.
"정부에선 반도체 등 전기전자분야를 FTA 수혜업종으로 꼽는데 반도체는 본래 관세가 없고 전자기기는 대부분 관세 환급대상이어서 실익이 별로 없다. 자동차도 이미 현대기아차가 상해와 북경에서 만들어지는데 과연 국산차에 대한 그들의 니즈가 얼마나 될까. 금융분야는 FTA가 아니더라도 중국진출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제대로된 분석과 진단 없이 무턱대고 체결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국내 경제와 산업 리스크는 너무 커진다."
그렇다면 이 교수의 주장은 한중 FTA를 포기하자는 것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폭과 수준에 있어 전술은 다양하게 있다. 당장은 수준 낮고 좁게 가면서 리스크를 낮춰 추후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FTA 찬성론자들만 모아놓고 논의하는 기존의 행태를 벗어나 상대국에 따라 폭과 수준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그런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 한중 FTA에 대한 '타이밍 리스크'가 걸림돌이다. 중국의 한중 FTA에 대한 적극적인 스탠스에 대한 갖가지 분석은 많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에 대한 대항마 성격이 짙다.
중국의 한중일 FTA에 대한 입장 역시 같은 이유다. 결국 이를 통해 동아시아 경제권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라는 것인데 향후 한중일 FTA와 미국 주도의 TPP 향방에 따라 지금처럼 한중 FTA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결국 기회가 왔을때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중국이 왜 한국과의 FTA에 적극적인지에 대한 분석은 많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라며 "다만 우리로선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김 박사는 "여타 FTA 중 경제적인 이득을 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정치적 이유로, 우리는 경제적 이유로 이를 활용하면 된다. 피해를 우려해 중국과의 FTA를 피하면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성장동력을 잃어버려 뒷걸음 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농어민 피해가 우려되고 FTA 파급력도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을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는 말은 거듭 강조했다. 더욱이 과거 외교통상부 시절 농수축산업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조율자로 나섰지만 산업통상자원부로 통상업무가 이관됨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있을 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