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정책 방향을 사전 예고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은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경기를 가급적 신속하게 회복시키는 데 목적을 둔 것이지만 실상 시장의 날카로운 시험에 직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책자들의 ‘입’에 기댄 시장 움직임은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며, 언행 일치를 보이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의 불신을 초래해 오히려 시장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통화정책의 방향이 상이한 것과 별도로 선진국 중앙은행은 선제적인 가이드를 제시하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상당 기간’이라는 모호한 문구 대신 2% 인플레이션과 6.5%의 실업률을 양적완화(QE) 종료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나 일본이 인플레이션 2% 달성을 전례없는 유동성 공급의 목표로 제시한 것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위기 진화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최근 초저금리를 중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시장에 일종의 가이드를 제시한 셈이다. 영국의 영란은행(BOE)은 투자자들에게 금리의 향방을 점친 베팅이 들어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투자가들은 중앙은행이 구두 발언으로 시장 방향을 통제하는 데 한계에 근접했다고 주장했다.
도이체방크의 길레스 모크 이코노미스트는 “모호한 말만으로 시장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더 이상 어렵다”며 “중앙은행의 선제적 정책 가이드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때 투명하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베렌버그 은행의 롭 우드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앙은행의 ‘액션’ 없이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투자자들은 정책자들이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금융시장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스웨덴의 사례가 최근 선진국 중앙은행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릭스뱅크가 2007년 이후 기준금리 전망을 시장에 제시하면서 정책 투명성을 높인 것이 사실이지만 경제 전망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잘못된 해석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벤 메이 이코노미스트는 “선제적인 정책 예고가 일반 투자자들과 금융시장 전반의 통제력을 높일 것이라는 계산은 착각”이라며 “구두 발언이나 가이드에 의존하는 전략으로는 시장금리 급등을 방지하고 내수 경기를 끌어올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