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기의 달빛 (시인 고은과의 대화, 대담 김형수, 한길사 펴냄)
‘나의 삶도 햇빛을 삼키고 달빛을 토했다. 이것은 그 이야기의 첫걸음이다.’라고 이 책은 시작한다.
1933년 식민지 조선반도의 쌀이 조선인의 굶주림을 비웃으며 일본으로 실려가기 위해 산더미를 이루었던 군산항 인근의 비옥한 농토에서 빈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던 원로 시인 고은이 그간 삶의 역정을 잔잔하게 토로한다. 그리고 그보다 한 세대 늦게 태어난 김형수 시인이 추임새를 넣는다. 둘의 대화는 촘촘한 편집임에도 장장 669페이지에 이른다.
두 시인이 대화를 나누는 곳은 와이파이(Wi-Fi, 무선인터넷)가 터지는 대낮의 커피하우스가 아니다. 붉은 노을 타고 앉아 술잔을 부딪히는 격정의 선술집도 아니다. 이지러진 그믐달 아스라이 산봉우리에 걸치고, 친구를 찾는 소쩍새 울음이 가끔씩 칠흑의 고요를 갈라놓는 산방에서 설록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원로 시인은 일제 식민지 시기의 소년 다카바야시다. 6•25 전쟁 통의 청년 고은태다. 연이은 가출, 제대로의 출가와 해인사, 그리고 오랜 시인의 길을 걸어 온 고은이다. 독자는 대 시인 고은의 삶을 통해 한 시대 지적 변화와 역동의 현장을 열쇠구멍 같은 틈으로 들여다 보는 듯 생생함을 경험한다. 여기에 원로 시인은 두 세기에 걸친 신세타령일 뿐이라고 응수한다.
두 번의 세계전쟁과 지역분쟁이 이어진 20세기는 야만의 세기였다. 그리고 30년의 세월로 300년을 따라잡은 21세기는 질풍노도의 세기, ‘근대의 범람’이었다. 산업화의 융단폭격으로 전통사회의 공동체 양식이 해체되던 고통의 한 복판을 가로질렀던 계엄령과 압제의 70년대, 시인은 ‘무단’이라는 가명으로 ‘실천문학’의 달빛을 타고 구로공단 봉제공장 여공들의 아픔을 쓰다듬어야 했다. 두 세기에 걸친 양서류 인생이다. 아가미로 물속에서 살다가 땅으로 올라와 폐와 피부로 호흡하는 양서류.
그런 시인의 심장 바닥에는 불이 들어있다. 5세 때 살던 집과 대숲을 활활 태웠던 불, 고모의 등에 업혀 보았던 그 불길이 운명의 매듭마다 기억에서 부활, 시인의 불길로 타오른다. 현재 그 불은 ‘겨레말 남북 공통 편찬사업’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노 시인의 ‘임종 사업’이다. 언젠가는 이루어 질 통일의 시기, 남북 후손들의 막힘 없는 소통을 위해 이 땅의 원로이자 어르신께서 깊은 애정과 혜안으로 태우는 불길인 것이다.
형형한 눈빛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시인의 근심 또한 여전하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전자문명의 무혈점령으로 인간은 핸드폰의 삭막한 식민지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여, 나의 과거는 너야. 너의 미래는 나야. 우린 친구야. 어쩔 수 없어. 운명이야.”라 생각하는 애정 어린 근심이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무렵, 시인은 군산항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인 뱃사람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죽음에서 다시 시작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의 순간이었다.
아마도 ‘두 세기의 달빛’ 2부는 그 바닷가에서의 격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양(兩) 세기의 달빛’ 하면 구식이고, ‘두 세기의 달빛’ 하면 ‘양(兩)’의 이중적 여운이 없어져 고민할 만큼 자상하고 섬세한 시인의 언어로.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 한 그 꽃.’ 이야기를.
최보기 북컬럼니스트(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