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회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주인'이란 단어가 좀 낡아보이긴 하지만, 회사란 우선 '회사의 주인'의 이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지분 구조에 따라 한 명의 지배주주가 주인이 될 수도 있겠고, 다수의 소액주주가 주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주인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원들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조직원들에게도 '주인의식'을 갖게 해줄 필요도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건 이 모두를 위해 중요하다.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혹은 이해를 같이 하는 주주들의 지분이 많아 힘이 클 경우 이런 메커니즘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경영진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주주총회는 그런 걸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자리다. 무능력한 경영진에 대해선 교체가 요구될 수 있고, 반대로 능력있는 경영진에겐 더 많은 보수를 주겠다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주가를 더 높여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영 전략과 계획을 물어보는 것도 당연하다.
애플 주총은 원래 마치 '부흥회' 같은 분위기 속에 열리기로 유명했다. 비상한 능력과 어떤 면에선 독재로 불릴 만큼 강한 추진력을 가졌던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자(CEO)였던 시절, 그는 거의 '애플교' 교주와 같았다. 그가 어떻게 한 해 동안 기업을 이끌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비전을 발표하면 그 내용 이상으로 주주들은 강한 믿음을 보였다. 주총 조금 전에 있는 잡스의 생일(2월24일)을 축하하는 노래가 주총장에서 울려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잡스가 와병으로 회사를 떠나있던 시절 병세가 어떻고, 후계 구도는 어떻게 구성될 지 등에 대해 비밀에 붙이면서 주주들은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그래도 애플 주가가 오르기만 할 때엔 괜찮았다. 애플 그 자체였던 잡스도 세상을 뜨고 아이폰과 아이패드 성공으로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면서도 배당을 하지 않아 주주들의 불만이 커졌다. 작년에 처음으로 배당금을 지급했지만 만족감을 주지 못했고, 지난해 9월 이후 37%나 주가가 미끄러지자 주주들은 초조해 하기 시작했다.
![]() |
애플의 현금 보유액 추이(출처=월스트리트저널) |
애플은 달리 이를 주주들에게 나눠주거나 연구개발(R&D) 및 인수합병(M&A) 등에 쓰겠다는 식의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고, 주주들은 어느 정도는 더 배당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갖고 있어 대립이 팽팽했다.
헤지펀드 투자자 데이비드 아인혼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인혼은 다른 주주들에게 우선주 발행과 관련한 조항을 삭제하려는 애플 경영진의 제안에 반대할 것을 제안했다.
우선주는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보통주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챙길 수 있는 주식. 이걸 없애려는 건 현금을 깔고 앉아 계속 주주들에게는 배당하지 않으려는 수작이라는게 아인혼의 견해였다. 그는 이 안건을 다른 안건과 일괄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내 승리했다. 그래서 애플은 이 안건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번 주총에서 애플이 현금을 풀 획기적인 계획을 내놓은 건 아니다. 한 마디로 주주였다면 김새는 주총이었을 것이다. 팀 쿡 CEO는 "우리는 현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매우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고만 했다. 항간에 돌았던 주식 액면분할 소식도 없었고 새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도 없었다.
쿡 CEO는 아이패드 미니가 기존 아이패드 매출을 갉아먹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경쟁사 제품에 시장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답을 내놨고, 신제품 계획과 관련해선 "새로운 카테고리를 생각하고 있다"면서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 |
오른쪽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출처=월스트리트저널) |
대답해야 할 핵심을 애써 에둘러 피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그런데도 쿡 CEO의 연임에 대한 주주들의 찬성은 99.1%에 달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주총에서 영업비밀이나 구체화되지 못한 신사업 등을 발표하는 것도 물론 위험하다. 근거없는, 그래서 결국 지킬 수도 없는 말을 내놨다 주어담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더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삼성전자, 구글 등이 사방에서 포위해 오는 가운데 애플이 어떤 길을 선택해 성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힌트 정도는 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건 돌려 말해 "장사를 잘 하고 있다"는 증거이긴 하다. 하지만 기업은 투자를 통해 성장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존재다. 어느 정도가 기준선이 될 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위험하지 않을 만큼의 현금을 유보해 두고 나머지는 R&D와 M&A, 마케팅과 판촉뿐 아니라 내부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로 성장성을 강화시키기도 해야 할 것이다. 주주들에게도 과실을 돌려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
쿡 CEO는 동요하지 말고 침착히 기다려 달라(Sit tight and stay calm)는 메시지를 보냈다. 가뜩이나 애플이 향후 2년 어려움에 빠질 것이란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이 나오고 협력업체인 중국 팍스콘의 신규 채용이 중단되면서 애플의 성장성이 이제 한계에 접어든 것이 아니냔 말이 나오고 있는 참이다.
배당을 하지 않기로는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도 유명하다. 하지만 버핏은 기업 사냥을 통해 회사의 가치를 올리는데 돈을 쓴다. 버핏은 2011년 주총에선 배당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버크셔가 배당을 시작한다는 것은 회사가 1달러를 투자해 주주들에게 1달러보다 더 큰 돈을 줄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즉 배당을 하지 않고 투자를 계속해서 성장해 받을 수 있는 과실을 더 크게 하는데 하는데 비중을 두겠다는 것이다.
또다시 버핏의 말을 빌리자면 "주식투자는 기업의 일부를 사는 것이자 동업을 하는 것"이다. 주주들은 소액주주든 그렇지 않든 기업의 주인이다. 이번 주총에서 애플은 이들에 대한 성의를 좀 더 보였어야 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