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심각성을 반영하여 세계은행의 2013년 세계개발보고서는 '일자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고, 미국, 유럽 등의 많은 국가들이 일자리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역대 대선에서 이번 대선처럼 일자리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은 처음일 듯 싶다. 이제 일자리 문제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기대 수준에 맞는 변변한 일자리가 없이 백수로 지내는 청년층, 목숨 바쳐 일하던 직장에서 일찍 내몰린 중년층, 자식 부양에 허덕이다 은퇴준비를 못해 최소 생계비를 벌기위해 일자리가 절박하게 필요한 장·노년층에 걸친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일자리 문제가 시간이 가면서 개선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실업률은 2012년 3.2%로 OECD국가 중 최저를 자랑하는 듯하지만, 사실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OECD 2011 통계에 따르면, 한국 노동시장은 경제활동참여율이 낮고 특히 청년층의 경제활동참여율은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되는 23%로 OECD 국가 중 최저수준이고, 비정규직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 25%나 이르는 기형적 구조이다.
또한 갤럽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에 30시간 이상 일하며 월급 받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는 정규직 취업자는 24%에 불과하다. 갤럽에 의하면 정규직 취업자는 스웨덴이 52%로 세계에서 제일 높고 미국 41%, 이웃 아시아 국가인 싱가포르 47%, 타이완 39%, 일본 36%, 중국 28%,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가 23%, 청년 실업으로 폭동이 난 이집트가 22%이니 우리의 일자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경제 및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이들 정책들이 일자리 문제라는 구조적이고 복잡·다기한 문제를 풀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일자리 대책에 대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일자리 대책은 안타깝게도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뿐만 아니라 각 부처별로 산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들을 총합 체계적으로 선도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정책 목표와 집행력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자리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일자리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는 경제침체에 따른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 구조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리처드 프리드만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동구권, 중국, 인도 등에서 단순 노동력이 시장경제에 대거 편입되면서, 세계 노동공급인력은 2000년에 이르러 편입전의 15억 수준에서 29억으로 배증되었고, 이에 따라 자본장비율도 편입전 대비 61% 수준으로 급감되었다. 이와 함께 폭풍처럼 밀어 닫친 세계화와 ICT 기술진보는, 기존의 노동에 대한 자본과 기술의 힘의 균형과 글로벌 생산구조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애플 등의 기업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들이 자본과 기술의 보다 우월적인 지위와 이동성을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을 대상으로 생산과 노동을 아웃소싱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의 저숙련 노동인력에 대한 수요는 급감되었다. 최근에는 ICT 기술의 진보에 따라 사무직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에 대한 아웃소싱이 증가하면서 중간급 숙련 노동인력의 공동화가 가파르게 진전되고 실정이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1990년대 이후 (i) 동구권, 인도, 중국 등으로부터의 저숙련 노동인력의 대량 편입, (ii) 무역 및 서비스의 개방화와 자본과 노동의 유동화로 특징되는 세계화, (iii) ICT로 대변되는 기술진보라는 세가지 요인에 의한 급격한 구조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이들 세가지 요인은 세계의 노동 수요와 공급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한국 경제의 경우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개방화와 대기업 중심의 산업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앞의 3가지 요인에 의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그의 범위와 속도에 있어 다른 어느 나라 비해서도 큰 폭으로 발생되었다. 1990년대 이후 산업이 지식기술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직 계열화되면서, 고급 지식기술 관련 일자리는 제한적으로 증가된 반면, 제조업 분야의 단순 사무직과 저숙련 노동인력에 대한 일자리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제조업에서의 수요 감소분을 서비스 분야의 저숙련·저임금 인력수요로 충당하면서, 일자리의 양극화와 질적 저하가 급속히 초래됐다. KDI 연구에 따르면 한국노동시장은 1992년에서 2006년 15년간 섬유, 가죽, 신발제조업에서 약 70%의 취업자가 감소한 반면, 부동산 · 임대 · 사업서비스업 220%, 보건 및 사회서비스업은 약 135%의 취업자가 증가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정리하면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일자리 문제는 경제침체에 따른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 구조변화의 산물이다. 9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동구권, 인도, 중국 등으로부터의 노동자의 대량 유입, 세계화, 기술진보라는 세가지 요인에 의한 급격한 구조변화를 겪었고, 이는 국내 노동시장의 급속한 양극화와 질적 저하를 유발하였다.
이와 같이 일자리 문제를 국내외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결과로 진단할 때와 단순히 경제 침체의 현상으로 이해할 때와의 정책적 대응은 그의 접근 방법, 방향성, 그리고 강도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본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서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나성섭 아시아개발은행(ADB) 남아시아 인간사회개발 디렉터 프로필
고려대학교를 거쳐 1993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이후 일본 국제기독교대학과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국제경제기구인 ADB의 남아시아 인간개발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경제, 인프라, 교육, 보건 등 폭 넓은 분야에 대한 정책 및 투자계획 입안 및 실행에 직접 참여한 생생한 현장 정책 경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