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전율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휴 잭맨 |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레 미제라블’은 아카데미가 선택한 톰 후퍼 감독과 세계 4대 뮤지컬을 빚어낸 제작자 캐머런 맥킨토시가 합작한 대작이다.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내로라하는 배우가 한 무대에서 만나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할리우드가 작정하고 뛰어든 대형 프로젝트 ‘레 미제라블’의 면면은 ‘드림팀’을 떠올리게 한다. 원작자와 연출자, 제작자, 배우들까지 이름 하나하나 열거해 나가자면 영화팬으로서는 황홀할 지경이다.
하지만 우려 역시 컸던 게 ‘레 미제라블’이다. 원작은 말할 것도 없이 뮤지컬이 워낙 세계적으로 사랑 받아온 터라 영화가 과연 더 보여줄 것이 있을까 염려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좋은 배우들 데려다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듣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리암 니슨, 우마 서먼, 클레어 데인즈를 투입하고도 아쉬움을 남겼던 1998년작 ‘레 미제라블(각색판)’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휴 잭맨·왼쪽)이 몸 파는 신세로 전락한 판틴(앤 해서웨이)을 발견하는 장면 |
2시간40분에 달하는 영화 ‘레 미제라블’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일단 우려는 접어도 좋을 만하다. 지금까지 팬들은 아무리 좋은 제작진과 배우가 만나도 졸작이 탄생하는 어이없는 경험을 해왔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톰 후퍼 감독의 자신감을 입증해 보였다. 물론 뮤지컬을 따분해하는 영화팬이라면 이 작품 역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는지 모른다. 긴 시간 동안 몸을 비틀며 하품을 연발하게 될 지도.
‘레 미제라블’은 영화사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는 작품은 아니다. ‘물랑 루즈’(2001)나 ‘시카고’(2002)와 같이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로 극을 이끌어가는 뮤지컬 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객석을 압도하는 사운드, 특히 배우들의 살아있는 노래다. 힘차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비통한 배우들의 노래는 ‘레 미제라블’의 화면을 타고 라이브 무대처럼 관객의 귓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실제로 ‘레 미제라블’의 배우들은 이어폰을 착용한 채 연기하며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 악보를 보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뮤지컬 배우처럼 역할에 깊숙하게 빠져든 상태에서 있는 힘껏 노래 불러야 했다. 덕분에 배우들의 노래는 그들의 몸짓과 하나가 돼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된다. 마치 MP3파일만 듣다 라이브 무대에서 생음악을 접하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된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휴 잭맨·왼쪽)과 그를 평생 뒤쫓는 자베르(러셀 크로) |
눈도 즐겁다. 깐깐한 고증을 거쳐 탄생한 ‘레 미제라블’의 무대는 당연히 뮤지컬의 그것을 압도한다. 이 배경과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눈부시다. 특히 휴 잭맨이 놀랍다. 얼굴의 근육과 핏줄 하나까지 기구한 장발장의 인생을 닮았다. 그가 절규하듯 부르는 ‘후 엠 아이(Who am I)’는 판틴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과 더불어 이 작품 최고의 곡으로 손꼽을 만하다.
시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사랑을 꽃피우는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왼쪽)와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
연기에 관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러셀 크로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베르 경감을 잘 재현했다. 낮게 깔리는 보이스가 매력적인 그는 제법 톤이 높은 자베르의 솔로곡들을 소화했다. 러셀 크로의 연기를 보노라면 만약 휴 잭맨과 서로 역할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즐거운 상상이 떠오른다.
판틴 역을 맡아 아름다운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들려주는 앤 해서웨이 |
무엇보다 영화 ‘레 미제라블’은 열정에 사로잡혀 촬영에 몰입한 배우들의 색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주연, 조연, 단역을 막론하고 스스로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듯, 얼굴 가득 숨길 수 없는 떨림과 설렘, 열정을 품고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