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기금이 고래로 성장했는데 연못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고래도 죽게 되고 연못이라는 생태계도 훼손될 수 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이같은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글로벌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기금규모는 급속히 증가하는데 협소한 국내시장에서만 머물면 투자의 한계는 물론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장기불황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는 글로벌 시장의 위험요소를 어떻게 헤쳐갈지는 분명한 과제다.
직접투자보다는 해외 운용사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투자 시스템도 '남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부분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6월말 기준 기금은 367원에 달한다. 원화기준으로는 GPIF(일본) 1551조원, ABP(네덜란드) 378조원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 규모다. 국민연금은 9월말 기준으로는 386조원으로 늘어났다.
기금의 적립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 2008년에 235조4000억원이었던 기금은 3년 만인 2011년말에는 348조8000억원으로 113조4000억원이나 증가했다. 특히 올해 들어 9개월 동안 4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최근 4년 간 무려 50%를 넘어서는 증가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추세를 고려하면 오는 2020년에는 1000조원, 2043년에는 최대 2465조원의 기금이 쌓일 것으로 국민연금 측은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기금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은 효율적인 위험 분산과 안정적 장기 수익 제고를 목표로 투자 대상과 지역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채권에 편중된 자산운용 구조를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저성장, 저금리 시대를 맞아 투자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며 "국내채권 비중을 줄이고 주식·대체투자 및 해외투자 비중을 점차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 다변화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같은 국내채권 중심의 소극적인 기금운용으로는 적정 기대수익을 맞추기가 어렵고, 연금재정의 장기 안정성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기금의 채권투자 비중은 66.3%(국내 61.6%, 해외 4.7%)다.
사실 국민연금은 최근 3년 간 글로벌 투자를 크게 늘렸다. 2008년말 16조원에서 올해 9월 기준 61조3000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기금 대비로는 15.9%에 해당되는 비중이다.
하지만 이같은 수치는 해외 주요 연기금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단적으로 CalPERS(미국)은 전체 기금의 53.9%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고, APG(네덜란드)는 무려 82.3%를 해외투자에 쏟아붙고 있다. 자국 내 다양한 투자처가 있어 해외투자에 다소 소극적이던 일본 GPIF(18.5%)에 비해서도 비중은 낮다.
국민연금이 최근 들어 해외 주식과 채권은 물론 부동산, 인프라, 사모 등 대체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글로벌 우량 실물자산에 투자를 늘리면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겠다는 복안이다.
최근만 하더라도 HSBC 빌딩(영국), 코롤니얼 파이프라인(미국) 등 1조원대의 대형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으로부터 주목받았다. 1740억원을 투자한 영국 개트윅 공항은 지난 한해 투자원금의 44%인 760억원 상당의 투자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휠라코리아의 미국 아큐시네트 인수, 스무디즈킹코리아의 미국 본사 인수 등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사모투자 역시 수익성과 함께 국내기업의 글보벌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부분이다.
내부적으로는 이같은 해외투자를 오는 2016년까지 전체 기금의 20% 이상 비중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 비중을 최대 5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만, 유럽시장은 물론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장기불황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투자의 걸음마를 뗀 국민연금에게는 위험요소를 어떻게 헤쳐가야할지 분명한 과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직접투자보다는 해외 운용사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투자 시스템이 수수료 떼먹기 수준의 '남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투자에서 큰손이 해외투자에서도 큰손으로 자리잡으려면 정보력이나 운영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면서 "세계의 금융시장을 꼼꼼하게 모니터하면서 제대로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투자 다변화와 국내 주요기업의 전략적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 해외 동반펀드 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에 국민연금이 재무적 장기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투자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장기투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기금규모 증가에 따른 투자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장기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현재 해외 동반펀드 MOU를 체결한 기업은 KT&G(3920억원), 포스코(4000억원), 동원그룹(2900억원), SK그룹(4000억원), GS건설(2940억원), KT(4000억원) 등이다.
이밖에도 LS그룹과는 3000억원의 계약 체결이 진행중이고, 삼성물산, 한화그룹, 한라그룹, 두산그룹 등 20여개 기업과 각각 수천억원대 연금약정을 계획하고 최종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