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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삼성의 25년②] 제2창업 '신경영'··혁신과 도전

기사입력 : 2012년11월22일 11:19

최종수정 : 2012년11월22일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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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양섭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5년 전 취임하면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며 제 2창업을 선언했다. 25년 이 회장의 취임 역사는 혁신과 도전이었다. 위기에 앞선 혁신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내수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93년 ‘자식과 마누라를 빼고는 다 바꾸라’던 신경영에 이어 디자인경영, 창조경영 등을 표방하며 그는 위기가 눈앞에 오기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이 회장이 취임하던 당시 국내 1,2위를 다투던 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은 오늘날 메모리반도체·TV·휴대폰 등 20여가지 품목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87년 삼성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삼성기를 흔들고 있다./사진제공=삼성

 ◆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

삼성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지난 1993년 이 회장은 사장단과 핵심간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모두 바꾸라'라고 주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전자는 진행성 암에 걸려 있고, 삼성중공업은 영양실조, 삼성건설은 영양실조에 당뇨병, 삼성종합화학은 애초부터 설립해서는 안되는 회사였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삼성종합화학의 중간 쯤 되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계열사 사장단에겐 충격적인 경영진단이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잡았지만 초창기 개혁의 속도는 이 회장의 기대에는 다소 못미쳤다.

이 회장은 2년후인 1995년 알게마이네 자이퉁지에 기고한 ‘21세기를 향한 아젠더(Agenda fur das 21 Jahrhundert)’라는 글에서 이같은 위기의식을 또 한번 전달했다.

그는 "회장 취임 이전부터 질 위주의 경영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지만 경영관행은 여전히 양적 기조를 벗어나지 못했고 대단히 위험한 타성이 그룹을 지배하고 있었고 내 눈에는 위험수위를 넘는 것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제공=삼성


◆ 품질 경영..'휴대폰 화형식'

질 위주의 경영을 강조해온 이 회장의 생각은 품질경영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또 다시 충격요법으로 품질경영을 삼성그룹에 체득화시켰다.

삼성전자의 품질 혁신을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게 바로 '화형식' 일화다. 1995년 경북 구미공장에서 품질 불량인 무선 전화기 수만대를 불태운 일화는 유명하다.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선물한 무선전화기의 통화품질이 좋지 않다는 반응을 듣고 직원들에게 '위기감'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같은 드라마틱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는 "고객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한다. 돈을 받으면서 어떻게 그런 물건을 팔았단 말인가"라며 무선전화기와 팩스 등을 폐기 처분하라고 극약처방을 내렸다.

휴대폰 ‘애니콜’과 ‘갤럭시’의 신화는 이런 아픔 뒤에 탄생했다.

◆ 인재경영 '샐러리맨 신화'

삼성 직원들의 자부심에는 이 회장의 인재경영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삼성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해외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국내에서는 자타공인 최고의 인기 직장이 됐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삼성에 지원자가 몰리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의 인재경영은 샐러리맨 신화로 이어졌다. 진대제·이기태·황창규 등 뛰어난 실적을 올린 경영인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삼성의 인사정책은 철저한 '신상필벌'로 유명하다. 실적이 좋으면 그 만큼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

인재경영만큼 이 회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자인'이다.

오늘날 삼성을 있게 만든 또 하나의 힘은 디자인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에서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고 진단했다. 지난 1995년에는 삼성디자인학교(SADI)라는 학교도 설립했다.

지난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회장은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또 한번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는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다. 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며 끊임없는 혁신을 강조했다.

 

▲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비교전시회를 참관한 뒤 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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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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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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